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휴가를 낸 직원들이 많아진다. 이프레옌도 휴가를 내서, 오늘이 지나면 다음달 중순이 되어야 얼굴을 볼 수 있다. 나는 아직 수습기간이라 휴가를 쓸 수는 없다. 45일이 지나면 휴가를 쓸 수 있다고 한다.
오미크론 바이러스 때문에 퀘벡도 확진자가 많아지고, 나도 곧 재택근무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또 격리기간이 시작되려나? 바이러스는 무섭지만 화상회의를 하는 건 좋다.
오늘 점심시간에는 이프레옌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평범하게 오늘 날씨로 시작한 이야기가 무척 길어졌다.
"오늘 날씨가 이상하게 따뜻하네요. 9도예요. 저번주에는 영하 9도였는데."
"확실히 정상이 아니네. 그러고 보니 레떼 인디엔(l'été indien)이라고 알아?"
"음... 들어본 것 같은데요. 영어로 인디안 썸머예요?"
"맞아. 추울 때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날을 레떼 인디엔이라고 해. 왜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불러. 그러고 보니 여기 온 지 3년 됐다고 했지? 그럼 퀘벡의 영하 40도 날씨를 아직 안 겪어봤겠네."
"으아... 영하 40도요? 말만 들어도 무섭네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날은 일년에 이틀 정도밖에 안되긴 하지만. 예전에 그런 날 외출해서 지하철 밖으로 나왔거든. 그런데 장갑을 끼기도 전에 손이 얼어서 굳어버린 거야! 장갑이 안들어가더라고. 바로 슈퍼에 들어가서 손부터 녹였지. 한국은 어때? 한국도 추워?"
"겨울에는 꽤 추워요. 서울은 영하 5도 날씨도 꽤 있고, 바람이 불면 아플 정도로 추워요."
"쿠바는 추워봤자 18도 정도야. 정말 좋지?"
"오, 18도면 계속 반팔 입어도 되겠어요."
"쿠바를 비교하자면 보라보라, 아니면 하와이 정도를 꼽겠어. 물론 똑같지는 않지만, 그 정도로 예쁘고 좋아."
그러다 우리는 또 쿠바 사람들의 제한된 자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어떤 건지 몰라. 기본적인 자유가 다 제한되니, 그런 삶을 상상할 수나 있겠어?"
"음, 저는 좀 들어봤어요. 북한 사람들도 여행도 못하고, 직업도 선택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요즘은 한국 드라마를 보기만 해도 잡혀간다고 해요."
"쿠바도 그래!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내 젊을 때가 떠오르네. 젊을 때 나는 쿠바 청년 공산당의 높은 직위를 맡고 있었어. 빨간 수첩을 항상 지니고 다녔지. 그 빨간 수첩이 권위를 보여주거든. 그러다 어느 날은 어떤 소년이 영어로 된 팝송을 들었다는 이유로 잡혀왔어."
"쿠바도 외국 노래를 못 듣는군요?"
"영어로 되어 있기만 해도 적국의 노래라고 스파이 의심을 받고 수년동안 감옥에 갇힐 수 있어.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이 소년은 영어 음악을 듣고 적국을 감시하려는 목적으로 영어를 배우는 거다. 이런 말을 만들어 냈지. 다른 공산당원이 내 말을 듣고 갸웃갸웃하더라고. 내가 그 소년한테 '너, 적국 감시를 위해 영어를 배우려는 거 맞지?' 이렇게 물으니, 가엾게도 걔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맞다고 맞다고 끄덕이더라고."
"세상에, 한 사람을 살렸네요."
"즉석에서 막 지어낸 거야! 다행히 그애는 풀려났어. 난 그러고 나서 빨간 수첩을 아무데나 버렸어. 내가 빨간 수첩을 버렸다니까 사람들은 다들 나보고 정신이 나갔냐고, 미쳤냐고 그랬지."
"그 빨간 수첩을 버리면 공산당원 높은 자리도 버리는 거예요?"
"그렇지. 이제는 다시 갈 수 없어. 내가 어떻게 여기 왔는지 알아?"
"어떻게 왔는데요?"
"공산당에서 내게 일을 시켰어. 난 경제학 학위가 있어서 관련 업무를 할 수 있었거든. 몬트리올에 와서 쿠바 관련 사업체 조사를 하는 일을 맡았는데, 딱 일주일을 주더라고. 일주일이 지나면 얄짤없이 바로 쿠바로 돌아가야 하는 거야. 난 호텔방에서 4일 밤을 새서 일을 미리 끝내버렸지. 그리고 주변을 봤는데 호텔 로비에 날 감시하는 사람이 있더라고. 그 사람 눈을 피해 모자도 쓰고 수염도 기르고 몰래 호텔 주방을 통해서 밖으로 나왔어."
"우와, 영화 같아요. 그리고 어떻게 됐어요?"
"그 다음 난민 신청을 하러 갔지. 감시를 피해 나온 순간 국가의 배신자가 된 거니까. 다행히 캐나다 연방 정부 건물을 찾아 들어갔는데, 참 웃기게도 직원들이 휴가라는 거야! 3일 후에 오라고 하더라고. 휴가가 끝나야 신청을 받아준대."
"이쪽은 목숨이 달렸는데, 휴가라니 참 아이러니해요. 캐나다의 그런 점이 좋기는 하지만 말이예요."
"나도 캐나다의 그런 시스템은 정말 좋아."
"근데 돈도 없고 호텔방도 없고, 그 3일동안 어디에 있었어요?"
"노숙자 쉼터에 갔지. 그때 양복이랑 조끼랑 쫙 빼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으로 노숙자 쉼터에 가니 다들 이상하게 쳐다보더라고. 난 그냥 '외국인입니다, 여기서 3일 묵어야 해요.'했지."
"세상에... 엄청난 이야기네요."
"여기에 친척도, 친구도 아무도 없이 혼자 온 거야. 영화 같지?"
"이 이야기, 다른 사람들한테 말해 줘도 되요?"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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