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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프랑스어로 봉꾸!가 무슨 뜻이에요?

by 밀리멜리 2021.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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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일이 뭔지 이제야 좀 감이 잡히는데, 그 중에서도 회의가 가장 큰 일이다. 회의 준비하고, 회의 참석자 모집하고, 회의록 쓰고, 남는 시간에는 회의록을 읽으며 보낸다.

 

아무튼 회의 항목마다 공통적으로 "봉꾸! (Bons coups!)" 라는 말이 쓰여 있다.

 

프랑스어로 봉(bon)은 '좋다'는 뜻이고, 꾸(coup)는 '한 대, 한 방'이라는 뜻으로 자주 쓰이는 말인데, 꾸가 붙어서 생기는 단어들이 몇몇 개 있다.

 

  • 꾸데타(Coup d'Etat, 쿠데타)
  • 꾸드뿌앙(Coup de point, 죽빵 한대)
  • 꾸드불(Coup de boule, 머리 박치기)
  • 꾸드방(Coup de vent, 돌풍)
  • 꾸드퍼(Coup de feu, 발사)
  • 쿠드푸드흐(Coup de foudre, 한눈에 반하다)
  • 꾸드껴(Coup de cœur, 푹 빠져 좋아하다)

 

'꾸'라는 말이 들어가면 다 한 대 치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좋은 한 방'은 뭔지...? 감이 안 잡힌다. 바로 상사에게 물어보았다.

 

봉꾸! (Bons coups)

 

"봉꾸가 뭐예요? 서로한테 조언 해주는 거예요?"

"아니, 조언은 아니고. 누가 뭐 잘한 일 있으면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격려해 주는 거야."

"오... 그렇구나."

"너도 이따 회의 들어오면 알거야. 직접 보는 게 낫지!"

 

회의록을 계속 읽어도 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

 

그러다 결국 연구 회의에 들어가니 뭔지 대강 알게 되었다.

 

연구회의는 정말 신세계였다. 딱딱하고 지루한 화상회의와는 다르게, 게임같은 화면에 캐릭터가 움직였다. 이게 회의 맞아?

 

연구직을 맡고 있는 프랑스가 발랄한 목소리로 회의를 시작했다. 프랑스의 캐릭터를 따라가니 커다란 공간이 있고, 알록달록한 스티커와 아이콘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게다가 마우스를 움직이면 내 캐릭터가 커서를 따라서 움직인다. 이게 바로 그 메타버스인가요....? 아닌가?

 

"자! 연구회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멜리! 나 잘 따라와야 해."

"어떻게 따라가?"

"따라가기 버튼 누르면 돼. 옳지, 이제 따라온다."

 

프랑스 말대로 하니 파란색 펭귄 아이콘이 주황색 기린 아이콘을 막 따라간다. 초록 상어, 빨간 독수리들도 줄줄이 주황색 기린 아이콘을 따라간다. 이런 회의는 태어나서 처음이다.

 

귀여운 캐릭터가 돌아다니던 연구회의

 

"이번주 연구 결과는 이러이러했고요. ..."

 

사실 회의할 때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라서 멍때리게 된다. 회의록을 쓸 필요도 없어서 그냥 아이콘이 졸졸졸 따라가는 것만 구경했다. 프랑스는 회의공간을 귀엽게 잘 꾸며놓았다. 서랍도 있고, 보드판도 있고, 금고도 있다. 그렇게 메타버스 회의에 푹 빠져 있는데, 프랑스가 말했다.

 

"봉꾸 시간입니다!"

 

금고 앞이 바로 '봉꾸'를 하는 곳이었다. 크리스틴이 시작했다.

 

"마리-크리스틴에게 봉꾸를 주고 싶어요. 마리-크리스틴이 이번에 낸 보고서 정말 잘 되었고, 결과가 깔끔해요."

"나는 프랑스에게 봉꾸를 주고 싶어요. 며칠 전에 석사과정이 끝났잖아요. 잘 마친 것 축하합니다."

"아직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인턴 제시에게 격려의 의미로 봉꾸를 줄게요!"

 

이렇게 서로 칭찬을 하면서 "참 잘했어요!"를 주는 시간이다. 아하,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회의록 읽을 땐 잘 이해가 가지 않던 봉꾸가 바로 이해가 갔다.

 

봉꾸! 이런 느낌

 

그러다 프랑스가 말했다. 

 

"나는 멜리에게 봉꾸를 주고 싶어요. 발을 들고 일을 시작했는데 잘하고 있으니까요.

 

나도 봉꾸를 받아서 조금 쑥스러웠다.

 

그러는 와중에, 또 모르는 말이 나왔다. 발을 들고 일을 시작했다(au pied levé)? 도대체 발을 들었다는 게 무슨 소리야? 일단 고맙다고 인사를 하긴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서 사전을 켜고 검색했다.

 

Au pied levé: 준비 없이, 예고 없이, 즉석에서

 

음. 이런 뜻이었다. 내 전임자가 아무런 인수인계 없이 떠나서 준비 없이 시작하긴 했다. 덕분에 부서 직위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에게 단순한 것부터 세세한 것까지 눈치없이 다 물어봐야 하긴 했다.

 

그런데 발을 드는 게 왜 준비없이 시작한다는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15세기 프랑스에는 발을 들었을 때 누가 갑자기 "소금 좀 건네주세요!"하면 바로 준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데, 뭐... 그런가 보다. 이렇게 하나 둘 프랑스어를 배워간다.

 

발을 들었다는 건 준비 없이 했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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