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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책 리뷰

두 도시 이야기 독후감 - 왜 가장 많이 팔린 단행본일까?

by 밀리멜리 2021.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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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단행본이라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읽었다. 2008년에 한 번 읽고 약 13년 만에 다시 읽는 것이다. 처음에 읽었을 땐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읽어서, 이 소설이 프랑스혁명에 관한 것인지조차 모르고 읽었다. 두 번 읽으니 좀 더 이해가 잘 된다.

 

 

 첫 문장과 프랑스 혁명

 

첫 문장이 인상적인 소설은 여럿 있겠지만,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은 그야말로 명문으로 꼽힌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말하자면, 지금과 너무나 흡사하게, 그 시절 목청 큰 권위자들 역시 좋든 나쁘든 간에 오직 극단적인 비교로만 그 시대를 규정하려고 했다.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첫 문단

 

프랑스혁명이 배경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이 문장을 읽으면 더욱 와닿는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민중과 혁명의 시대가 온다. 민중이 권력을 차지하리라는 믿음을 갖고 굶어 죽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갖는 최고의 시절이지만, 동시에 그 희망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시대이기도 하다. 귀족들에게 약탈과 착취, 압박을 받으며 민중은 먹을 것이 없어 허덕거린다. 혁명으로 시대를 바꿔보려 꿈틀대지만, 그 방향은 조금씩 엉뚱한 방향으로 어긋나 무고한 사람들까지 끔찍하게 죽어간다. 

 

영국인 찰스 디킨즈가 이웃 나라 프랑스의 혁명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보통 작품에서는 프랑스혁명이 영광스럽게 그려지지만, <두 도시 이야기>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이 문장이 정말 가치 있는 이유는 어떤 시대 상황에 갖다 붙여도 공감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하고, 상황이 혼란스러울수록 권력자들은 극단적인 비교를 하며 실수와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가?

 

 

 와인과 기요틴

 

이 소설에서 특히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초반에 와인통이 부서지는 장면이다.

 

우연히 수레에서 술통을 내리다가 통이 깨지고 와인이 쏟아지자, 굶주린 사람들은 포도주 맛을 보려고 우르르 달려 나온다. 무릎을 꿇고 맨손으로 술을 담아 마시거나, 머릿수건을 포도주에 담갔다가 아기 입에 짜 넣어주는 아기 엄마, 포도주가 밴 나무통 조각을 질겅질겅 씹는 사람도 있고, 끝내 사람들은 술이 스며든 진흙까지 모조리 마셔버린다. 이런 난리통에 포도주 웅덩이는 없어지고 갈고리처럼 갈퀸 손자국만 남아있다.

 

붉은 와인과 기요틴

 

적포도주가 땅을 적시고, 사람들이 허겁지겁 그 액체를 마시는 이미지는 바로 기요틴의 붉은 피, 그리고 피에 굶주린 사람들과 연결이 된다. 

 

기요틴이 얼마나 많은 머리를 벴는지, 그 아래 땅은 오염되고 부패되어 붉은색을 띠었다.

아름다운 소녀, 갈색 머리, 검은 머리, 잿빛 머리의 매력적인 부인, 젊은이, 정정한 노인, 귀족 출신, 농부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기요틴에게 붉은 포도주를 부어주었다. (...) 자유, 평등, 박애가 아니면 죽음을! 특히 마지막, 죽음을 가장 쉽게 갖다 바치는 것이 기요틴이었다!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중

 

"기요틴이라는 여자 이름을 딴 발명품"은 민중들의 숭배를 받기 시작한다. 민중들은 귀족의 머리를 베는 기요틴에 키스하고, 십자가 대신 기요틴 목걸이를 걸고 다닌다. '귀여운 성 기요틴'이라고 부르며 성인으로 추앙할 정도이다. 

 

붉은색의 이미지가 프랑스 대혁명의 끔찍하고도 공포스러운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일반 민중들이 그저 귀족의 일을 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되었고, 무고한 사람도 재판 없이 즉결 처형되는 경우도 많았다. 주요 등장인물인 찰스 다네이도 이런 흐름에 이끌려 처형장으로 이송된다.

 

 

 사랑 이야기

 

이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가 바로 사랑이다. 

 

루시 마네트는 의사 마네트 박사의 딸로, 아름다운 외모와 선한 성격으로 등장인물 모두의 사랑을 받는다. 루시 마네트는 결혼 전, 진상 변호사와 막장 변호사, 두 남자의 구애를 받는다. 그중에서도 진상 변호사인 스트라이버가 구애하는 모습이 매우 우스꽝스럽다.

 

스트라이버는 서른 살이 좀 넘었지만 쉰 살쯤으로 보이는 뚱뚱하고 허세많은 남자이다. 그는 자신과 결혼하는 것이 루시에게 행운이 될거라고 확신하고, 청혼을 할 거라며 으스대며 자랑한다. 주변 사람들은 '넌 너무 뚱뚱해...!'라고 속으로 생각할 뿐이지만. 물론 스트라이버는 단박에 거절을 당한다.

 

또 다른 짝사랑남인 시드니 카턴은 성격이 방탕하며 소심하다. 술주정꾼에 비참하고 자학 증세까지 있어서 루시를 좋아하면서도 감히 프러포즈할 생각조차 못한다. 결혼 며칠 전에서야 그는 겨우 고백을 하며,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기만 해도 헌신하리라는 다짐을 한다. 그의 짝사랑이 마지막에는 엄청난 반전으로 돌아오니, 시드니 카턴이 진정한 주인공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루시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시드니 (출처: 위키피디아)

 

루시 마네트가 이상적인 배우자로 선택한 사람은 변호사가 아닌 가정교사 찰스 다네이. 사실 그는 프랑스의 옛 귀족으로 과거를 숨기고 있지만, 시대의 흐름과 운명의 소용돌이에 얽히게 된다. 자신은 오래전 가문과 특권을 버렸지만, 그 가문이 저지른 악행 때문에 비극이 시작된다.

 

남녀의 사랑도 사랑이지만, 루시 아버지가 루시에게 보내는 사랑도 대단하다. 그는 의사로 덕망이 높은 사람이고, 과거 귀족의 횡포로 바스티유 감옥에 갇힌 전적이 있어 영향력까지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수감 당시의 트라우마로 정신이 미쳐버렸는데, 딸을 만나 행복해지고 딸의 행복을 위해서 의지력으로 정신을 찾고 정상적인 삶을 되찾는다. 하지만 이 아버지의 사랑 또한 시대의 흐름에 뒤엉켜 아이러니한 결과로 돌아온다.

 

 

 뜨개질과 장미

 

이 작품에서 남녀 주인공인 루시와 찰스는 둘 다 착하고 아름다워 캐릭터가 매우 평면적이다. 반대로 혁명세력을 이끄는 드파르주 부인은 매우 입체적이며 행동적인 인물로 나온다. 겉보기엔 항상 뜨개질만 하며 조용하며 차분하지만, 그녀의 마음속 안에는 증오와 복수심, 분노로 끓어오르고 있다.

 

소설 초반 내내 드파르주 부인은 생탕투안 술집에 앉아서 뜨개질을 한다. 뜨개질을 하고 있다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사실 그녀가 뜨고 있었던 것이 혁명이 시작하면 죽일 사람의 이름을 적어놓은 살생부 리스트였다는 걸 알았을 때의 반전 쾌감! 평범한 뜨개질이 아니라 사람 죽이는 뜨개질이었다.

 

마담 드파르주의 뜨개질

드파르주 부인의 장미도 인상 깊었다. 정부의 첩자가 혁명군을 감시하러 술집에 오면, 드파르주 부인은 장미를 꺼내 머리에 꽂는다. 장미는 요상하게 그녀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술집 손님들은 그녀와 장미를 본 순간 첩자가 있다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멀리 떠나버린다.

 

그녀가 왜 이런 증오와 분노, 복수심을 갖고 있는지는 소설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야 밝혀진다. 다른 사람들은 선한 찰스와 루시 부부가 무슨 잘못이냐며 동정심을 보이지만, 드파르주 부인만큼은 이들을 용서할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에서야 밝혀지는 루시 아버지의 고발장! 그들이 겪게 되는 운명의 장난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부분이다.


책의 분량이 꽤 두껍다. (단행본 기준 약 700 페이지, 전자책 기준 1470 페이지) 그래서인지 초반에는 읽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중반부터는 사건의 전개되면서 재밌어지고, 마지막 3부는 너무 궁금해서 한 자리에서 읽게 된다. 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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