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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동쪽 사무실 사람들

by 밀리멜리 2022.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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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 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요 며칠 긴장하게 되는데, 왜 긴장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휴일이 길었다가 오랜만에 다시 출근해서 월요병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남자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 조금 긴장돼. 왜 그럴까?"
"뭐가 긴장돼? 뭐 짤릴까봐 걱정돼?"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뭐가 걱정이야?"
"그냥, 모르는 사람들하고 낯선 언어로 말해야 한다는 거? 그러다가 못 알아들으면 진짜 난감해. 그게 걱정인가 봐."
"어쩔 수 없지. 그냥 계속 부딪히는 수밖에."

맞는 말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계속 부딪히는 수밖에 없지. 태생이 내향적이라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려면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다.

 

블로그에는 적지 않았지만 말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냥 알아들은 부분만 적는 것이다. 😅 마스크 때문에 어렵기도 하지만, 퀘벡 사람들은 사투리에 말이 빨라서 더 어렵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내가 임시로 일하는 사무실은 동쪽 사무실이라고 불리는데, 이쪽에는 사람들도 훨씬 많다. 

 

최근 관찰한 결과 여기는 나처럼 내향적인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루종일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디안이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안녕. 아까 복도에서 마주쳤죠. 새로운 얼굴이길래 보러왔어요."
"네, 임시로 여기서 일하고 있어요."

내 이름을 말했더니 아시아 이름이라 어차피 기억 못 한다는 말을 중얼거린다. 으잉? 


"그래도 들러서 인사해 줘서 고마워요. 여기 사람들 다 친절하네요."
"글쎄... 여기 사람들 다 친절한 건 아니야!"

이번에는 질렸다는 표정을 하면서 손을 절레절레 흔든다. 아마도 누구랑 사이가 좋지 않은가 보다. 😂 정말 다 친절한 것만은 아닌 듯!


쟝-세바스티앙이라는 사람은 정말 외향적이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도넛을 들고 출근한 이 사람은 바로 휴가 전에 너무 신이 나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다. 이 사람은 오자마자 복도에서 잡담을 나누더니,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따바르낙!" 하고 욕을 한다. 그러더니 내 사무실에 노크해서,

"잘 있었어요? 너무 춥죠? 사무실 안 여기 춥지 않아요?"
"네, 오늘 좀 춥네요."
"그쵸? 지금 제 사무실도 엄청 추워요! 제가 온도 높여달라고 요청 넣어놓을게요."

하더니 열댓 개가 넘는 사무실 한 바퀴를 다 돌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한다. 농담도 하고.

 

우와, 저 사교성 정말 대단한걸. 쟝-세바스티앙이 출근을 시작하니 사무실 전체가 다 들썩들썩한다. 

 


동쪽 사무실 창문

 

원래 사무실 리셉션에 있는 낸시라는 사람도 무척 외향적이다. 낸시는 인기가 많아서 낸시의 사무실에는 수다 떠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낸시랑은 얼굴을 바로 익히고, 자주 웃고, 나에게도 말을 많이 걸어줘서 고맙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잠깐 원래 사무실에 들렀더니, 낸시가 새해인사를 하며 반겨준다.

"좋은 새해 보내! 너 동쪽 사무실에서 일하니?"
"응, 맞아. 너는 사무실 안 옮겨? 언제까지 여기서 일해?"
"벵... 그건 잘 모르겠어."

 

'흠...', '글쎄...', '으음'처럼 뭔가를 생각할 때 내는 소리는 프랑스어로 벵(Ben)이다. 베에에엥... 이렇게 늘리기도 한다.

 

"혼자서 일하는 거야?"
"오, 아냐. 아직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꽤 있어."
"그거 다행이네. 아, 나도 여기로 돌아오고 싶다. 동쪽 사무실에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거든."
"올랄라, 그거 힘들겠다. 여기서도 신입이었는데, 거기서도 또 신입이네! 하하하!"

 

사무실 지하층 공사가 끝나면 다시 돌아올텐데, 언제가 될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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