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가 되기도 전에 크리스틴이 사무실 복도 한바퀴를 돈다.
"점심 먹자~ 밥 먹을 시간이야."
"지금 가요!"
건물 가장 중심에 카페테리아가 있다. 카페테리아라고 뭐 식당이 마련되어 있는 건 아니고, 간식 자판기와 전자레인지, 식탁, 냉장고가 있는 곳이다.
나는 싸온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셋팅해놓은 2분이 지나자 크리스틴이 말했다.
"네 음식이 다 되었구나, 꼬꼿."
크리스틴이 하는 말은 특히나 어렵다. 꼬꼿은 또 무슨 말이지? 아무튼 날 부르는 말이라는 건 알았다.
인터넷에 꼬꼿을 검색해보니 프랑스어로 닭들이 사랑하는 연인을 부를 때 쓰는 말이란다. 특히 작은 여자아이를 부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 나이가 많은데... 그래도 손주가 있는 크리스틴이 보기엔 그런가 보다. 사무실에 특히나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막내다. 한국에서 일할 땐 내가 나이 많은 편이었는데, 막내 취급을 받으니 그것도 좋다.
백인들 눈에는 동양인과 흑인은 특히 나이가 어려보인다. 그러나 동양인인 내가 생각하기에는 백인이 피부노화가 더 빨리 오는 게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멜라닌이 적어 자외선을 직빵으로 맞는데도 한국사람들처럼 선크림을 챙기거나 자외선에 신경쓰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
아무튼 내 주변에는 이렇게 여자 어른이 많은데, 나를 꼬꼿이라고 부르거나, 마셰리(Ma cherie), 마벨(Ma belle)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 다정한 호칭이고, 자신보다 어리거나 친구, 동료에게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나를 이렇게 부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사람들이 내 이름을 까먹었기 때문이다. 각자 사무실 앞에 이름 명패를 붙여놓지만, 나는 임시라서 명패가 없다. 게다가 여기 사람들에게는 너무 생소한 한국이름이라 입력이 거의 안된 듯 하다. 그렇다고 다시 내 이름 소개하기도 뭣하고, 그냥 지내고 있다.
"오늘은 뭘 싸왔니?"
"김치랑 계란이랑 김이요."
"넌 항상 김치를 먹는구나?"
"매일 먹죠. 😋"
"난 소고기 수프에 스파게티를 싸왔지. 어제랑 똑같은데 아직 괜찮아."
카를라가 오늘도 물통에 얼음을 꽉꽉 채워서 자리에 앉는다. 크리스틴이 카를라에게 묻는다.
"오늘은 화상회의 했니?"
"아, 회의하느라 좀 늦었어. 근데 화상회의 하면 꼭 내 얼굴에 결점만 보이더라! 내 얼굴만 보게 돼."
"하하하, 나도 그래. 얼굴에 뭐가 묻었는데 계속 모르고 있다가 화상회의 하고 나서야 알았어!"
"그럴 땐 얼른 카메라 잠깐 끄고 닦아야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눈폭풍이 와서 교통이 꽉 막혔던 이야기, 지인이 교통사고가 났다는 이야기, 그래도 차는 꼭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여전히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아무튼 앉아서 이야기 듣는 것도 재밌다.
오전에 눈이 많이 와서, 퇴근하는 사람들이 차 위에 쌓인 눈 치우느라 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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