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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결혼보다 반려동물 입양이 더 좋은 사람들

by 밀리멜리 2022.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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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집을 나섰는데, 바로 눈앞에서 지하철을 놓쳤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푸쉬식- 하고 지하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 놓쳤네!

그래도 지하철은 3~4분만에 금방금방 와서 걱정은 없다-만, 오늘 이상하게도 5분, 10분이 지나도 지하철이 오지 않는다.

 

"허가받지 않은 사람이 서비스 지연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하철 서비스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다른 메시지가 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지하철 어디에선가 사고가 난 모양이다.

 

그래도 10분만에 다시 지하철이 와서, 늦지는 않았다.

 

 

 

그렇게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역 안의 광고판에 눈길이 갔다.

 

이거 정말 퀘벡스러운 광고인데? 싶었다.

 

지하철 동물 입양 광고

 

결혼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관계를 위해, 입양하세요.

하는 동물구호단체의 광고였다.

 

게다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들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아예 가려져 있다!!

 

광고판의 여자 얼굴이 글씨에 가려져 있다니... 한국 광고디자이너들은 과연 이 광고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 당장 글자 딴곳으로 치우라고 했을 것 같다.

 

결혼보다 더 중요한 게 동물 입양이라니?!

그렇지만 그럴 만 하다. 퀘벡 사람들은 결혼보다 동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 그렇진 않겠지만, 적어도 내 팀원들은 그렇다. 우리 팀에는 아이가 있지만 동거하며 사는 커플들이 많다.

 

그래서 내 남편(몽 마리, mon mari)이라는 단어는 전혀 들을 수 없고, 대신 남자 파트너라는 뜻의 '몽 첨(Mon chum)'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듣는다. 몽은 '나의'라는 뜻이고, '첨'은 친구, 파트너를 뜻하는 퀘벡 슬랭이다.

 

여자 파트너는 마 블롱드(ma blonde)라고 부른다. 블롱드는 원래 금발을 뜻하는데, 이민자들은 왜 항상 여자친구가 금발이 아닌데 블롱드라고 부르냐고 의아해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첨과 블롱드


외국에서 온 이민자 동료가 하나 있는데, 요즘 한창 결혼한다고 다이어트를 한다. 결혼 준비하느라 바쁘다며 계속 결혼 이야기를 입에 달고 다니자 우리 팀원들은 '그놈의 유명한 결혼식'을 위해 유난이라며 장난치듯 살짝 비꼰다.

아무튼 이런 건 한국에서 보기 드문 문화인 것 같다.

 

동거가 이렇게 자리잡은 이유는 동거와 결혼이 법적/재산적/제도적으로 다른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트너 자격 신청도 너무나 쉽다.

두 사람이 동거는 한 주소에서 1년만 살면 자동으로 자격요건이 충족된다. 1년 함께 살았다는 증거(우편물, 고지서의 주소 등등)만 보여주고 동거신고만 하면 바로 동거 지위를 받을 수 있다. 두 사람의 성별은 당연히 상관이 없다.

그렇게 신고만 하면 동거 상태의 두 명은 결혼과 똑같은 권리와 효과를 얻는다. 동거와 결혼이 말만 다르고 실제론 똑같으니, 사람들은 굳이 결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신고가 쉬우니 당연 헤어지는 것도 쉽다. 이것도 서류 한장이면 충분하다. 

그러니 차라리 둘이서 동물을 입양하는 것이 관계 지속에 더 도움이 되는 게 당연하다. 정말 재밌는 곳이야.

 

결혼보다 반려동물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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