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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책 리뷰

에밀리 브론테 - 폭풍의 언덕 독후감

by 밀리멜리 2022.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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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폭풍 같은 소설이다. 나는 이 책을 좋아해서 3번이나 읽었는데, 10대에 한번, 20대에 한번, 30대가 되어 한번 읽었다. 20대 때 읽었을 땐 히스클리프의 복수 계획이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읽었을 땐 등장인물 모두가 가엾다 싶은 생각이 든다. 내 닉네임 밀리멜리의 밀리는 작가 에밀리 브론테에서 따온 것이다.

 

'폭풍의 언덕'의 작가 에밀리 브론테는 '제인 에어'의 작가 샬럿 브론테의 동생이다. 소설을 출판하기 전, 작가 브론테 자매들은 서로의 글을 읽고 비평을 해주었다고 한다. 샬럿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을 들으면 꿈자리가 사납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도 이 책을 읽고 자니 폭풍의 언덕 두 주인공이 꿈에 나와서 재밌었다. 꿈속에서 남녀가 싸우는 장면을 잠깐 봤는데, 아무래도 폭풍의 언덕 주인공들이 싸우는 걸 읽고 자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정도로 엄청난 성격의 캐릭터가 있는 책이 "폭풍의 언덕"이다.

 

꿈에 나올까 봐 무섭다는게 이런 건가요

 

 

 폭풍같은 성격

 

폭풍의 언덕이라는 제목이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의 오역이라고 하지만, 나는 참 잘 된 번역이라 생각한다. 워더링은 '폭풍 치는 날 휘몰아치는 바람'이라는 뜻의 고대 노르드어 사투리이고, 하이츠(Heights)는 언덕 꼭대기의 집을 의미한다. 그 제목처럼, 이 집에는 바람 잘 날 없다. 모든 캐릭터가 폭풍처럼 거칠고 까칠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다.

 

 

이 책에 성격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째서 그런지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날씨가 사람 성격에 많이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르겠다. 그 덕분에 책을 읽다 보면 세상에 별의별 말로 상대방을 모욕할 수가 있구나 싶다. 

 

"성격이 나약해서 거미줄 같아! 한번만 꼬집어도 아주 몰살하겠어."

"독을 준비하긴 했지만 이 수프에 넣진 않았으니 안심해."

"널 보느니 차라리 뱀에게 안기는 게 낫겠다."

 

 

 폭풍같은 사랑

 

이 책의 주제는 황량한 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벌어지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폭풍 같은 사랑이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떠한지는 캐서린의 고백에서 알 수 있다.

 

영화 폭풍의 언덕(2011), 카야 스코델라리오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히스클리프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건, 그와 내 영혼은 같은 것이야."

“He's more myself than I am. Whatever our souls are made of, his and mine are the same.”

 

이 말은 매우 로맨틱하게 들린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캐서린이 히스클리프가 아닌 다른 남자랑 결혼을 결심하면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곱게 자란 언쇼 가의 딸이고,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아버지가 어디선가 주워온 고아이다. 둘은 함께 자라며 서로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오빠에게 학대를 받으며 힘든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캐서린은 린튼 가에서 청혼을 받는다.

 

캐서린은 여러 날 고민하다 하녀 넬리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거지가 되고 품위가 떨어지겠지만, 린튼과 결혼하면 학대받는 히스클리프를 구할 수 있다고. 넬리는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조언했지만,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저버리는 게 아니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 모든 것이 없어져도, 히스클리프만 있으면 난 살아갈 거야. 세상 모든 것이 남고 그가 사라진다면 이 우주는 지독히 낯선 곳이 될 거야."

“If all else perished, and he remained, I should still continue to be; and if all else remained, and he were annihilated, the universe would turn to a mighty stranger.”

 

영화 폭풍의 언덕 (1939년)

 

그러나 막상 히스클리프는 이런 마음을 모르고, 그저 품위가 떨어진다는 것까지만 듣고 복수를 결심한다. 

 

 

 폭풍같은 복수

 

주워온 아이라 학대받던 히스클리프는 그날로 복수를 결심하며 떠났다. 그는 부자가 되어 돌아와 아주 천천히, 몇십 년을 들여 언쇼 가와 린튼 가를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 계획을 짜고 실행한다. 캐서린이 린튼과 결혼하고, 얼마 안 있어 캐서린은 아이를 낳다 죽는다.

 

 

히스클리프는 죽은 캐서린에게 이렇게 말한다.

 

"캐서린 언쇼, 내가 살아있는 한 너는 편히 쉬지 못하길. 내가 널 죽였다고 했지, 그럼 귀신이 되어 찾아와 봐. 죽은 사람은 자신을 죽인 사람에게 유령이 되어 나타난다며. 이승을 배회하는 거지. 항상 나와 있어 줘! 어느 형태여도 좋으니. 나를 미치게 해 줘! 다만 너를 볼 수 없는 이런 심연 속에 나를 남겨두지 마. 오, 하느님! 너무하십니다! 제 생명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제 영혼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Catherine Earnshaw, may you not rest as long as I am living. You said I killed you--haunt me then. The murdered do haunt their murderers. I believe--I know that ghosts have wandered the earth. Be with me always--take any form--drive me mad. Only do not leave me in this abyss, where I cannot find you! Oh, God! It is unutterable! I cannot live without my life! I cannot live without my soul!”

 

여기까지가 소설 중반이고, 그 이후로는 히스클리프의 잔인한 복수가 시작된다. 결국 히스클리프는 자기를 길러 준 언쇼 가문과 캐서린 남편 린튼 가문의 재산을 모두 자기 손안에 넣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히스클리프도 점점 미쳐간다.

 

실제로 에밀리 브론테의 증조할아버지는 양자였다가 쫓겨났는데, 몇년 뒤 부자가 되어 돌아와 집안의 토지와 가옥을 차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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