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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책 리뷰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소설 속 복선과 플롯 장치 - 벅빅과 크룩섕스

by 밀리멜리 2022.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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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해리포터 3권,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읽고 있다. 20주년 기숙사 표지 에디션인데, 이 책을 들고 다니면 책 표지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표지

 

해리 포터 책 시리즈 20주년 색깔별 기숙사 표지 에디션 - 소장욕구 만땅!

 

해리 포터 책 시리즈 20주년 색깔별 기숙사 표지 에디션 - 소장욕구 만땅!

서점에 가서 해리 포터 코너를 지나쳤는데 책 표지들이 너무 예뻤다. 여러 표지를 봤지만 소장욕구 넘치도록 예쁜 책들은 또 처음이다. 20주년 기념 표지 금박 도장이 딱 찍혀 있다. 파란 책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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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원서는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조금씩 조금씩 읽고 있다. 지금은 한창 소설 중반, 갈등이 고조되는 부분을 읽고 있다. 처음 읽은 건 정말 어릴 때였는데, 성인이 되어 머리가 커지고 또 원서로 읽으니 그 때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재미있는 요소들이 또 보인다.

 

 

 크룩섕스와 벅빅


3학년이 시작되고, 헤르미온느는 호그와트에 고양이 크룩섕스를 데리고 온다.

 

(내가 예전에 읽을 땐 Crookshanks의 이름이 크룩생크였는데, 새로운 번역판에서는 크룩섕스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헤르미온느와 크룩섕스

 

애완쥐 스캐버스를 데리고 다니는 론은 헤르미온느가 고양이를 데리고 오자 짜증을 낸다. 론의 늙은 쥐 스캐버스는 가뜩이나 건강이 좋지 않다. 심지어 신비한 동물 가게에서는 "이런 쥐의 수명은 길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고양이 크룩생스는 틈만 나면 론의 애완쥐를 공격한다. 이건 크룩섕스가 특별히 똑똑한 편이어서, 수상한 사람이나 동물을 잘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애완쥐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론은 헤르미온느에게 자꾸 화를 내고, 둘의 사이는 점점 나빠져 간다.

어느 날, 론의 애완쥐가 실종되고, 피와 고양이 털만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자기 쥐가 잡아먹혔다고 생각한 론은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 헤르미온느와 크게 싸우고 절교 직전까지 간다. 해리도 덩달아 헤르미온느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애완동물 때문에 싸운 론과 헤르미온느

그 사실을 알게 된 해그리드는 론과 해리에게 헤르미온느와 화해하라고 설득한다.

"너희 요즘 헤르미온느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며, 그 고양이 때문..."
"걔 고양이가 스캐버스를 먹어버렸다고요!"`
"고양이가 고양이답게 행동했기 때문이지."

고양이가 고양이답게 행동해서 그렇겠지


신비한 동물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해그리드 교수는 동물의 본성과 습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 해그리드가 헤르미온느에게 공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해그리드의 수업시간에 사나운 히포그리프 벅빅이 말포이를 공격했고, 그 바람에 벅빅은 처형될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크룩섕크와 벅빅은 똑같이 동물 본성의 죄로 미움을 받고 있는 셈이다.

 

말포이를 공격한 벅빅

 

벅빅이 처형되어 죽을까 봐 슬퍼하는 해그리드를 도와준 것은 오직 헤르미온느였다. 해리와 론은 너무 바빠서 신경쓸 새가 없었다. 하지만, 론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다.

 

"헤르미온느가 그 고양이를 없애기만 하면 다시 말을 걸 거예요. 그치만 계속 고양이를 감싼다니까요! 미쳤어요. 내 말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아요!"
"아, 사람들은 애완동물에 대해선 사리판단을 잘 못하기도 하지."
해그리드가 현명한 말을 했다. 뒤쪽에 있던 벅빅이 해그리드 베개 위로 흰족제비 뼈를 툭툭 뱉어냈다.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조앤 K 롤링.

벅빅이 해그리드 배게 위로 흰족제비 뼈를 툭툭 뱉어냈다.


자기의 애완 쥐를 해친 고양이와, 흰족제비를 먹고 있는 벅빅이 묘하게 교차되는 부분에서 어쩐지 감동을 받았다. 물론 론은 아직 납득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론이 벅빅이 사람을 공격한 죄로 처형되지 않도록 돕고 싶다면, 먼저 고양이 크룩섕스와 헤르미온느를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흰족제비를 먹는 벅빅 (그림 출처: 해리포터위키)


그런 면에서, 쥐-고양이, 흰족제비-벅빅을 절묘하게 병렬시킨 조앤 롤링은 정말 대단한 작가이다.

 

 

 영화에는 없는 이야기

 

조앤 롤링은 초반에 이런 소설적 장치를 깔아 놓고, 독자들에게 두 동물에 대해서 한번씩 더 생각해보게 만든다. 나중에 더 나아가, 작가는 크룩섕스와 벅빅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한다.

 

이 부분은 영화에서 짤렸기 때문에, 이곳에 그 이야기를 적어두고 싶다.

 

시리우스가 아즈카반 감옥에서 탈출하고, 해리가 있는 호그와트 학교에 침투한다. 호그와트의 교수들과 학생들은 모두 바짝 긴장하면서도, 어떻게 시리우스가 난공불락의 요새 호그와트에 침입해서 몰래 돌아다닐 수 있는지 궁금해 한다.

 

순간이동을 했을 거야, 축지법을 썼을 꺼야... 하며. 그러나 헤르미온느가 유명한 대사, "호그와트의 역사라는 책을 읽은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거니?"를 시전한다. 

"축지법을 쓸 줄 아는지도 모르지." 조금 떨어져 있는 래번클로 아이가 말했다."그냥 뿅하고 나타나는 거 말야."
"변장했을지도 몰라." 후플푸프의 5학년생이 말했다.
"날아 들어왔을 수도 있어."딘 토마스가 넌지시 말했다.

"아이 답답해. 정말이지 '호그와트의 역사' 라는 책을 읽은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거니?"
헤르미온느가 듣다 못해 뿌루퉁해서 해리와 론에게 말했다. 

진짜 밤하늘이 아니라 마법을 걸어 천장을 만든거야. 호그와트의 역사를 읽어서 알고 있지.

 

헤르미온느: 호그와트의 역사 안 읽어볼 거니??

 

호그와트가 여러 마법이 걸려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이기 때문에 변장이나 축지법으로는 절대 침입할 수 없다는 내용이 '호그와트의 역사'라는 책에 나온다. 그래서 어떻게 그 탄탄한 방어막을 뚫고 침입할 수 있었는지, 덤블도어 교장이나 맥고나걸 교수까지 몰라 당황해한다.

 

맥고나걸 교수: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영화에서는 자세한 대답이 없지만, 책에서는 그 힌트를 엿볼 수 있다.

 

크룩섕스가 워낙 똑똑한 덕분에 아즈카반의 죄수 시리우스의 트릭과 정체를 모두 알아낸다. 시리우스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과, 스캐버스의 정체를 알아낸 크룩섕스는 그를 위해 여러 심부름을 한다. 해리 포터에게 줄 빗자루 새로운 파이어볼트 주문서를 배달한 것도 크룩섕스였다.

 

시리우스가 호그와트 학교 안을 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크룩섕스의 안내 덕분이었다. 그리핀도르 기숙사 문을 지키는 초상화 안의 캐도간 경은 시리우스를 쉽게 들여보내 줬는데, 그가 그리핀도르 암호를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초상화 속 캐도간 경: 암호를 다 알더라구요!

이 암호를 시리우스에게 배달해 준 것도 바로 크룩섕스였다.

 

그게 바로 나였다옹~

 

아즈카반의 죄수가 호그와트 침입에 성공했던 이유가 바로 고양이였다니, 이런 재미있는 뒷이야기는 아마 영화로 만들긴 힘들 것이다. (CG를 많이 써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고양이가 빗자루 주문서 배달하는 건 너무 보고 싶은 장면이다.)

 

사소한 동물들에게도 재미있는 내러티브가 있다니, 이야기에 버려지는 부분이 없다! 내가 나중에 소설을 쓴다면 이런 부분은 꼭 배워서 써먹고 싶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재미있는 건 1권부터 뿌려놓은 숨은 복선과 실마리가 무척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해리포터 시리즈가 그렇게 엄청난 인기를 끈 것이겠지. 이런 부분은 영화에서 잘 표현되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책으로 읽으니 구석구석 숨은 복선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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