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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영상리뷰

최악의 디즈니 실사화 영화, <뮬란 (2020)> (Mulan, 2020)

by 밀리멜리 2020.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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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쓰다가 열이 받아서 객관적으로 리뷰할 수 없는 점 양해드립니다. 최악이에요. 아무리 디즈니 실사화 영화 별로다 별로다 해도 뮬란만큼 엉망진창으로 만든 영화는 없었습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1. 뮬란 캐릭터 파괴

 

 일단,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줬던 뮬란의 장점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1999년도 원작 뮬란은 디즈니 공주로서 여성의 가치관 변화를 보여줬던 획기적인 영화였습니다. 스토리 수정 없이 원작 그대로만 갔다면 최근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는 페미니즘 붐을 타고 정말 메가히트할 수도 있었을 텐데, 참 잘 말아먹었네요. 

 

애니메이션에서의 뮬란은 어느 디즈니 공주와도 다릅니다. 태생부터 왕녀나 귀족도 아니고, 마지막에 결혼을 하지도 않고, 디즈니 공주 중 유일무이하게 사람을 죽인 공주입니다. 사회적으로 여자는 예쁘고 시집 잘가야 한다, 착한 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 그 고정관념을 깨버리는 인물입니다.

 

뮬란이 처음 훈련에 참여했을 때,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서툽니다. 하지만 뮬란과 그 동료들은 훈련을 통해 점점 발전해나가고, 결국엔 남성성을 상징하는 힘에 맞서 이겨냅니다. 뮬란이 남자들도 하지 못하는 훈련을 밤 새서 노력으로 이겨내는 모습이라거나, 머리를 써서 대포로 눈사태를 일으켜 전쟁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면, 뮬란은 성장하는 캐릭터다! 시련이 있다면 극복하면 된다를 말해주고 있어요.

 

여성스러운 것이 강한 것이다.

뮬란이 더 대단한 점은, 가장 여성스러운 것이 가장 강한 것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뮬란이 강한 이유는 뮬란이 남자보다 더 힘이 세서가 아니라 여자답기 때문입니다. 뮬란이 샨유와 싸울 때, 힘이 아닌 유연함으로 그를 쓰러뜨립니다. 또, 궁에 잠입하기 위해서 동료들과 함께 여장을 해서 결국에 황제를 구하죠. 여자도 남자처럼 행동할 수 있고, 남자가 여자처럼 행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합니다. 

 

뮬란이 황제를 구하는 것도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가부장제도와 계급 사회를 다 뛰어넘어, 황제가 나와 같은 인간이고, 내가 황제를 도와주고 싶어서 구해냅니다. 그래서 황제가 벼슬을 주겠노라고 했지만 가부장제도와 계급사회의 끝판왕인 그 벼슬을 스스로 거절하고 집에 돌아옵니다. 

 

 

영화에서는 뮬란이 초능력을 다룰 수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뮬란의 아이덴티티가 파괴되어 버립니다. 뮬란이 평범한 소녀가 아니기 때문에 자칫하면 '여자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꼭 초능력이 아니더라도 영화 속 뮬란은 태생부터 강하고 남성적입니다. 물동이도 척척 들고, 시련이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악당을 죽일 때도 유연함이 아닌 무기와 힘을 씁니다.

 

제일 열받는 점은 뮬란이 수동적인 캐릭터라는 점입니다. 아니 대체 왜요! 왜!!! 애니메이션에서는 뮬란이 스스로 원했기 때문에 황제를 구했지만, 영화에서는 가문에 영광을 가져다 주는 것이 의무이기 때문에 황제를 구합니다. 그래야만 하니까. 그것이 의무이니까. 그리고 소중한 가부장제도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이 영화 때문에 페미니즘이 몇십 년 퇴보한 것 같아요. 진심으로 열받아요. 이 영화를 여자 감독이 제작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뮬란같은 초능력이 없으면, 그냥 가부장제도에 맞춰 살아야죠. 그저 선 보고 시집 잘 가면 됩니다. 왜 새로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는 위 캐릭터처럼요. 

 

2. 오리엔탈 판타지

 

저는 중국인도 아니고 중국 문화 전문가도 아니지만, 이 영화는 중국 문화를 알아보려는 노력조차 안한 것 같아요. 그냥 내 머릿속에 있는 환상 속의 동양, 무협 판타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옷차림이나 머리는 꽤 고증을 잘 했다고 하니 건들지는 않겠습니다만, 스쳐가는 장면들이 <게이샤의 추억>에서 본 것 같은 장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과 닮아 있어서 짜증이 납니다.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게이샤나, 지브리 애니나, 중국 무협물이나 다 그게 그거인가봐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vs 뮬란 2020

 3. 재미있는 캐릭터 빼고 재미없는 캐릭터 넣기

 

코믹한 상황을 만들어내어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감초 역할을 하는 무슈가 없습니다. 대신 더 좋은 캐릭터가 나오면 아무 말 안할 텐데, 뜬금없는 불사조가 스리슬쩍 등장합니다. 별 이유도 없이요.

 

메인빌런인 샨유를 빼고 마녀인 공리를 집어넣은 점도 이상합니다. 가장 강하다는 남성인 샨유를 힘없는 여성인 뮬란이 기지를 발휘해 쓰러뜨리는 것이 매력인데 그것도 모두 사라졌죠. 마녀의 존재가 제일 이상해요. 혼자서 나라 하나는 손가락 까딱 하면 쓰러뜨릴 만한 존재가 애초에 뭐하러 다른 악당과 손을 잡았을까요. 그리고 손을 잡았으면 끝까지 잡을 것이지 별 이유도 없이 갑자기 뮬란에게 조언을 해주고 결국엔 뮬란을 지키려다 화살을 맞아 죽습니다. 악당 맞아요? 그렇게 강한데 그냥 화살 한 대 맞고 죽는다고요? 도대체 왜그러는 거예요?

 

뮬란의 전쟁 동료들도 개성이 쭉 빠집니다. 가만히 있어도 재밌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인데, 영화속에서 별로 하는 일이 없어져요. 쓸데없이 목욕씬에서 성적 긴장감 조성하는 부분은 정말 버렸으면 좋겠어요. 그냥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걸...

 

4. 노래 없애기

 

Reflection과 I'll make a man out of you 없는 뮬란이 뮬란인가요? 뮬란이 기를 다루게 된다는 설정 때문에 두 노래를 끼워맞추기 힘듭니다. 뮬란에겐 시련이 없으니까요. 거울에 비추는 내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남자와 대등한 힘이 없어서 고민하지도 않습니다. 뮬란 자체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된 것 같아요.

 

개봉 전부터 배우 캐스팅이나, 위구르 촬영, 공리의 뒤늦은 합류 등등 논란이 많았죠. 까보니 이건 정말 안쓰러울 정도입니다. 원래의 만화 뮬란에서 재미있는 요소만 꼭꼭 집어 내다 버린 영화입니다. 제작자들이 분명 "어떻게 하면 더 재미없게 만들까?" 를 목표로 만들었나봐요. 코로나 때문에 개봉 미뤘다던데, 꼭 그럴필요 있었을지... 코로나 있으나 없으나 흥행 못하는 건 기정사실이었을 텐데요.

 

이제 와서는 이왕 망친 거, 아예 확 망쳐서 바이럴로 만든 다음 원작 애니메이션 보고 싶게 만드는 전략인가 싶을 정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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