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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수습기간의 반이 지나고,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by 밀리멜리 2022.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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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수습기간의 반이 지났다. 3월 중순에 수습기간이 끝나면 정규직이 되고, 휴가도 쌓을 수 있다. 일하는 게 조금씩 익숙해지니 이제 할 일이 많이 생기고 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할 일이 별로 없어 널널했는데, 이제 일이 점점 쌓여 넘치기 시작한다. 업무가 마구마구 쌓이는 중이다.

 

어쩐지 지금까지 너무 한가하더라 싶었다. 일이 이렇게 쉬울 리가 없었다.

 

퇴근시간 하늘이 점점 밝아지고 있다

다이앤이 퇴직하고, 한 달이나 비어 있던 마담 나탈리의 비서 자리를 채워줄 뉴페이스가 도착했다. 이름은 셸비. 셸비는 성격이 좋고, 이전에 우리 회사 다른 사무실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경험도 많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아직도 내가 막내다. 셸비가 경험이 많은 덕분에 금방 손맞춰 일하고 서로에게 배울 수 있었다.

셸비가 도착한 지 열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에 걸려 격리중이다. 셸비는 7살짜리 딸이 있는데, 학교에서 딸이 코로나에 걸려와 옮은 것이다. 퀘벡에서는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잘 씌우지 않고, 의무사항이 아니라서 아이들이 그렇게 코로나에 많이 걸린다고 한다.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셸비의 일도 내가 맡고 있다. 마담 나탈리는 미안해하며 일을 맡기는데, 원래 마담 나탈리의 일을 도와주는 게 내 일이기 때문에 좀 어렵지만 불만은 없다.

상사를 참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쟝도 그렇고, 나탈리도 그렇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사람들을 참 잘 아껴준다는 생각이 든다. 직책은 상하관계이지만 인간적으로는 수평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마담 나탈리는 얼마 전 셸비와 나에게 초콜릿까지 보내주었다. 

 

나탈리가 보내준 발렌타인 초콜릿

Petites sucreries pour vous dire petit merci!!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려고 보내는 작은 초콜릿이야!!)

나만 받은 줄 알았는데, 동쪽 사무실 사람들도 상사에게서 발렌타인 초콜릿을 받았다. 직원들은 생각도 않는데, 높은 자리에 있는 셰프(부서장)들이 부하직원들을 먼저 챙기는 게 정말 신기하다.

재택근무를 하는 우리팀 마리-크리스틴은 모두가 다 친절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 팀이 워낙 슈퍼 쟝띠(gentil, 친절한)한 편이라고 한다. 나탈리는 꼼꼼하고 좀 까다로운 편이고, 쟝은 느긋하며 일에 있어서 유연하고 관대하다고 말했다. 

 

고맙고 또 고마워. 좋은 주말 보내. - 나탈리

나탈리는 뭐 자그마한 일을 보내도 꼭 고맙다는 답장을 보내준다.

 

맨 위에 쓰인 글, 메르씨 앙꼬 에 앙꼬(Merci encore et encore)는 고맙고 또 고마워! 라는 뜻이다. 

 

메르씨(Merci) : 고마워

앙꼬(Encore) : 또, 다시. (앵콜 할 때 그 encore이다)

에(Et): 그리고

 


아무튼, 이전에 일할 땐 어디서나 사람과의 갈등이 가장 문제였다. 딱히 잘못한 사람이 없어도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주변 사람들에게 풀다 보니 분위기가 좋지 않은 적이 많았다. 아니면 파벌이 생기거나...

여기서는 서로가 엄청 친하진 않지만 두루두루 친절하게 대해주고, 점심 시간에도 쓸데없는 농담을 하고 웃으니 일이 많아져도 스트레스가 적다. 동쪽 사무실 사람들은 내 팀원이 아니어도 내 안부를 잘 묻고 점심도 같이 먹는다. 물론 오늘도 점심시간 농담따먹기의 30%정도밖에 알아듣지 못했지만, 다들 웃으니 나는 그냥 따라 웃었다.

 

크리스틴: 하하하, 꼬꼿, 걱정할 거 없어. 우리 지금 쓰잘떼기 없는 농담 하는 거야.

나: 그렇군요. ㅋㅋㅋ

 

카린: 아, 머리카락이 기니까 귀찮네. 잘라야겠어.

크리스틴: 너 항상 머리를 꽉 묶어서 올리고 다니잖아. 귀찮을 게 뭐 있어?

카린: 자꾸 빗어야 하잖아.

쟝세바스티앙: 맞아, 머리 빗는 거 귀찮지. 난 하도 빗었더니 머리가 이제 없어. 이거 봐.

 

머리를 빗었더니 머리카락이 없어졌어!

 

쟝세바스티앙이 동그랗고 훤하게 벗겨진 뒷머리를 가리킨다. 난 이것만 알아듣고 풉 하고 웃었다.

 

 

 

일이 많아져도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니 또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프랑스어를 잘 하고 싶어서 직업학교 비서학과에서 공부했는데, 학교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직장에서 쓰고 있어서 신기하다. 

오늘은 4개나 되는 프랑스어 문서를 점검했다. 퀘벡 사람들이 쓴 초안을 보고 문법 실수나 오타, 비문 등등을 고치는 일이다. 처음엔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쓴 글을 고치라고? 하며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요즘엔 웹사이트를 찾아보면 문법 검사기도 있고, 세번 네번씩 같은 글을 읽다 보면 실수가 눈에 띈다. 그 와중에 꼼꼼한 성격의 마담 나탈리는 거의 실수가 없다. 하다 보면 언어능력보다 꼼꼼함이 더 많이 요구되는 일이다.

마리-크리스틴도 내게 문서 검토를 맡겼는데, "너 정말 예리한 눈을 가졌구나!"라고 칭찬을 받았다. 다음 회의 봉꾸시간(참 잘했어요 시간)에 꼭 잘했다고 언급해 주겠다는 메일을 받았다.

 

사실 지금까지는 내가 과연 쓸모가 있나 싶었는데, 좋은 피드백을 받으니 신난다.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오늘은 신나는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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