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일할 때 휴가를 제대로 보낸 적이 거의 없다. 설날과 추석 때에만 이틀씩 쉬는 날을 붙여서 쉬곤 했다. 그게 다였는데...
오늘 아침 출근했더니 아무도 없었다. 어쩐 일이지? 복도가 아주 조용하다. 흐음...
10분 뒤, 내 옆자리 사무실의 디안이 도착했다. 디안은 은발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다닌다.
"안녕! 오늘 출근한 사람 우리 둘뿐이네!"
"정말요? 우와... 어쩐지 사람이 없더라니!"
"다들 재택근무하거나 휴가를 간 모양이야. 난 오늘 할 일이 많은데...!"
"저도 이제 곧 수습이 끝나서 휴가를 모을 수 있어요. 한국에서는 휴가 1년에 4일밖에 못썼는데, 빨리 써보고 싶어요!"
"그래? 여기서는 휴가가 4주야."
"4주요?!"
"그래. 나도 휴가를 가야지."
"왜요?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하나요?"
"아니. 내 애들은 이미 30대가 넘었단다. 난 손주도 있어."
디안은 딱 정색하며 말했다. 하하하, 내가 아무 말이나 해버렸구나 싶은 느낌이었다. 아무튼 우와, 휴가가 4주라니.
퀘벡에선 과연 프랑스의 영향권이어서 그런지, 휴가가 무척 길다는 걸 알고 감탄했다. 나도 수습기간이 끝나고부터는 조금씩 휴가를 쌓을 수 있어서 기대가 된다. 크리스마스와 설날은 가장 큰 휴가철이고, 퀘벡에서는 3월 첫주 전후도 꽤나 큰 휴가철이다.
3월 첫주, 일주일간은 "헐라쉬 스꼴레(Relâche scolaire)", 학교 봄방학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봄방학을 할 때면 가족 모두가 모여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권장한다. 이 주간을 위해서 우리 기관에서는 회의를 열고 "어떻게 쉴 방법을 만들어 낼 것인가"를 주제로 논의했다.
처음엔 뭐 이런게 회의 주제인가 싶었다. 그런데 회의 결과 나온 아이디어들이 재밌었다. 월요일 오전, 금요일 오후는 가급적이면 비워두기. 2주에 하루는 휴가 쓰기, 휴가 중에도 업무가 돌아갈 수 있도록 정리하기, 3월에 잡혀있는 회의는 취소하기 등등이었다.
이런 휴가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의료보건복지부 연계기관에서 일하는데, 코로나 기간동안 사람들이 쉴 수가 없었다. 환자도 많고, 병상도 부족하고, 간호사들과 보육교사들은 일손이 부족했다. 이제야 좀 코로나 확진자 수가 좀 잠잠해져서 의료기관 종사자들이 좀 쉴 수 있도록 휴가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아무튼, 아이들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봄방학 기간동안 휴가를 낸다. 그리고 학교 보낼 아이들 없이 지내는 사람들은 이 기간동안 동료들의 업무를 맡아준다.
심지어 대학생도 독서 주간(리딩 위크, Reading Week)라고 해서, 일주일간 쉰다.
이런 행복한 고민이 다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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