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특이한 회의에 참석했다. '관리직으로서 노동조합의 정책 중에 가장 불편한 것은 무엇인가'하는 회의였다. 회의 참석자들은 모두 관리자급이고, 나만 회의록 작성을 위해 들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프랑스어는 어렵다! 모르는 말 투성이었다. 회의에 들어갈 때마다 살짝 패닉이 온다. 들어보고 또 들어봐도 잘 모르는 내용인데, 어떡하면 좋지?!!
다행스럽게도 나탈리가 대신 노트를 적어주었고, 워드로 다시 정리해서 보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어휴, 다행이다. 정말 하나도 모르겠어서 눈앞이 캄캄했는데... 나탈리가 적어준 내용을 요약하자면 휴가 날짜가 맞지 않는다든지, 노조와의 협의서에 너무 자주 사인해야 하는 게 귀찮고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엥...! 알고 나니 이것도 하나의 컬처 쇼크다. 무엇보다도 공무원에 노조가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인으로서 놀라운데, 관리자 측에서의 불만이 고작 사인 많이 해서 귀찮다는 거랑, 휴가 날짜가 맞지 않는다는 거라니...
공무원으로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자동으로 노조에 가입된다. 노조에 가입한다는 서약서를 작성해야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그땐 뭔지도 모르고 작성했는데, 월급 명세서를 받고 보니 노동조합 이름으로 돈이 빠져나갔다. 도대체 이게 뭐길래 월급의 몇퍼센트를 떼어가나 싶었는데, 근무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시스템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퀘벡 공무원 사회는 노조가 큰 힘을 갖고 있다는 것도 배웠다. 그 돈이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는 것...! 다행스러운 일이다.
관리자가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해도 꼭 노조 협약서에 사인을 해야 한다. 월급, 승진, 보너스, 휴가, 채용기준 등 기본 정책은 모두 노조가 정한다. 인사부에서는 그 일을 처리하지, 정책을 변경할 힘은 모두 노조에 있다. 관리자들에겐 골치아픈 일이겠지만, 내 권리를 보장해 주는 단체가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다.
보통 한국의 회사도 그런가? 한국 회사를 다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닐 것 같다.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빨간 머리끈 매고 파업하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하긴, 퀘벡은 파업이 너무 일상적이라 심심하면 몇번씩 파업 소식이 들려온다.
이곳 카페테리아에는 파업을 지지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고, 개인 사무실에도 '파업을 지지한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무실 문에 붙은 파업 지지 스티커를 보고 난 내가 잘못 해석했는가 싶었는데... 그만큼 노동조합의 힘이 크다는 이야기인가 보다.
사무실에 붙은 '파업으로 가는 길!'이라는 스티커는 처음엔 정말 잘못 본 줄 알았다.
퀘벡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지양하는 캠페인을 많이 한다. 공무원 중 여성과 외국인을 우대채용하는 것도 그렇고, 특히나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애쓴다는 느낌이다. 덕분에 코로나가 심할 때에도 동양인이라고 차별받거나 한 경험이 없다. 정말 다행이다. 인종차별과 성차별 때문에 피해 보는 사람이 없도록 관리하는 것도 노조의 일이다.
이 포스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려니, 디안이 날 보며 말한다.
"집에 안 가니? 난 이제 간다."
"아, 곧 퇴근할 거예요! 이 포스터 보고 있었어요. 캐나다 사람들은 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많고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해서 정말 좋네요."
"음! 캐나다가 아니라 퀘벡이 특별히 그런 거야."
할머니들의 단골대사다. 캐나다 소리만 나오면 꼭 그 말을 고쳐준다.
'캐나다가 아니라 퀘벡.'
우리는 퇴근준비를 하면서 계속 이야기했다.
"저는 퀘벡이 또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그것도 좋아요. 한국에서는 청소년법에 문제가 있어서 논란이 많거든요. 학대받는 아이들도 많고..."
"맞아. 특히 퀘벡이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많아. 물론 시스템이 완벽하진 않아서 결함이 있긴 하지만, 최대한 보호해주려고 하거든. 우리가 하는 일 알아? 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감시하고 보호하는 일을 해. 그래서 경찰하고도 연락하고, 법원하고도 함께 일하지. 이쪽 복도랑, 저쪽에 있는 사람들은 다 청소년 범죄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야."
이제야 옆 사무실 사람들이 무슨 일 하는지 알게 되다니, 이런 건 진작에 물어봤어야 하는데! 어쩐지 점심시간에 왜 판사 이야기가 나오나 했다...🤔 갑자기 김혜수가 나온다는 그 시리즈가 생각난다. 인기 있다고 하던데, 소년재판인가?
"아, 그랬군요. 청소년 범죄라면 힘들지 않아요? 위험하거나..."
"특별히 힘들진 않아. 어떤 일이든지 어려운 면과 쉬운 면이 있는 법이지. 모두 그런 거 아니겠니."
디안의 현명한 말이 귓가에 오래 남는다. 어떤 일이든 어려운 면과 쉬운 면이 있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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