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처음으로 가본 몬트리올의 회식, 5시부터 7시까지

by 밀리멜리 2022. 3. 13.

반응형

원래 우리 팀에 있었던 조지아가 인사부에 지원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조지아가 돌아온 기념으로, 마리-크리스틴이 회식을 계획했다.

몬트리올의 회식은 "5 à 7 (쌍까셋)"이라고 불린다. 왜 5 à 7인고 하니, 저녁 5시부터 7시까지 펍이나 라운지 바에 가서 동료들끼리 한두잔 하러 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몬트리올에서 하는 첫 회식이라서 기대감에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게다가 재택근무때문에 매번 메일이나 화상회의로만 보던 동료들을 직접 만나는 것도 오랜만이라 정말 좋았다.

오후 4시 반에 업무를 마치고 서둘러 약속장소 펍으로 향했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지만 눈이 솔솔 오고 있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 와보는 곳이라 좀 헤맸다

조금 헤매다 약속장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벌써 우리 팀원들이 와 있었다.

"안녕! 여기 있었네! 직접 만나는 거 정말 오랜만이야!"
"그렇지? 여기 앉아서 메뉴 보고 주문해."
"나 쌍까셋 처음이야!"
"오! 그럼 기념해야겠네!"
"너 데리고 여기저기 다녀봐야겠다. 너 아직 몬트리올 다 구경 못했지?"
"집 주변 말고는 못 봤어. 그래주면 좋지! 나 이쪽도 처음 와봐."
"다음엔 남쪽으로 가보자. 강변가라 분위기도 좋고, 날씨 풀리면 정말 예쁠 거야."

한국의 회식과 다른 점이 여러가지 있다. 일단 상사가 회식비를 내주지 않는다. 😂 각자 알아서 마실 것을 시키고, 배가 고프면 알아서 서버에게 주문하고 떠나기 전에 각자 계산한다. 대신 오는 것도 자유, 떠나는 것도 자유다.

팀원들은 맥주 한잔씩 마시고, 나는 고민하다 칵테일 한 잔을 시켰다. 찐한 진저 에일과 라임 주스, 민트가 들어간 칵테일이었다.

진저에일 칵테일

"오, 너 뭐 시킨거야? 컵이 귀엽다!"
"이거 몬트리올 뮬이라는 칵테일인데, 맛있을 것 같아!"

달달하고 화한 민트와 생강 맛이 괜찮은 칵테일이었다. 술이 들어가니, 재밌는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물론 프랑스어와 음악소리 때문에 거의 못 알아들었지만, 우리 팀원들은 나를 위해 천천히, 크게 다시 한번 이야기해주었다. 회사 스캔들 이야기, 누구와 누가 사귄다는 이야기, 누가 바람 피운다는 이야기에서부터 거침없는 19금 이야기 등등...

우리 팀의 유일한 남자인 쟝이 잠깐 자리를 비우자 여자들끼리 바로 야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거침없어서 깜짝 놀랐다. 스케일과 묘사도 그렇고 😅 야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맥주를 가져다주는 웨이트리스가 우리 이야기를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 정말 재밌는 이야기를 하네. 나도 잠깐 여기서 이야기 들을래."

하고 여자 다섯이 진지하게 19금 이야기를 했다. 쟝이 돌아오자마자 이야기가 끊겨서 정말 아쉬웠다.


사회학을 전공한 마리-크리스틴과 미국 정치에 관심이 많은 쟝은 서로 이야기가 잘 통했다. 프랑스어의 압박과 정치지식 부족으로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경찰 총장이랑 장관이랑 사귀고 있단 말이지. 하지만 경찰이랑 장관은 함께하면 안되잖아! 서로 분리해야지."
"거기도 드라마가 엄청나네."
"맞아, 엄청난 드라마지. 하지만 누가 말리겠어? 사귀는 건 개인의 선택인데."
"퀘벡은 말이지, 어쨌든 선택권이 있다는 게 독특해. 너 모빌리자씨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경찰총장과 장관이 사귄다는 뉴스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라 잠시 멍해 있었는데 마리-크리스틴이 내게 물었다. 모빌리자씨옹이 뭔지 몰라 망설이는 나에게 쟝이 귀뜸을 해 줬다.

"이거, 함정 질문이야. 너 대답 안해도 돼."
"모빌리자씨옹이 뭔데?"
"그게, 마스크랑 방역수칙을 거부하고 개인의 자유 선택권대로 살겠다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거야."
"아하, 들어본 적 있어."
"그래, 선택권이 있더라도 사람들을 존중하며 권리를 주장해야지..."

저녁겸 안주, 스모크미트 샌드위치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정치와 사회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이제는 교육을 해도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없어. 가난한 지역에 있는 사람은 질낮은 교육을 받고, 부자 지역에 사는 사람은 좋은 교육을 받고... 결국 바뀌는 게 없잖아."
"한국은 어때?"
"한국은 교육에 엄청 공들이지. 그치만 정말 네 말대로 요즘은 교육을 많이 받는다고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어."
"한국은 교육에 대한 열정이 어마어마해! 한국은 얼마나 교육을 중요시하는지, 아이들이 수업 스트레스로 자살까지 한다니까!"
"어, 맞아. 잘 아는구나! 어떻게 알아?"
"사회학 전공했거든. 리서치하면서 배웠어.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그렇게 힘들게 공부한다며?"
"맞아. 그래서 슬픈 일이지. 내가 한국에서 강사 하면서도 시스템 때문에 좌절한 적이 많아. 내가 바꾸기도 힘들고. 그런 시스템이 캐나다로 온 이유 중 하나기도 해."

펍 내부


시간이 지나고 마리-크리스틴은 제대로 취했다. 나를 붙잡고 계속 조언을 해 주었는데, 취한 와중에도 정말 따뜻한 조언이라서 기분이 좋다.

"너, 너는 능력도 좋고 일도 잘 하는데, 하지만 네 의견을 표현해야 해. 네가 필요한 거 있으면 알아서 찾아서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돼. 모르는 거 있으면 항상 물어보고, 내가 도와줄 테니까. 어려운 거 있으면 전화해."
"정말 따뜻하다. 고마워."
"알았지? 너 의견을 표현하라고. 가만히 있지 말고, 필요한 거 있으면 요구하고 스스로 찾아. 그리고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나한테 전화해."
"응! 고마워."
"의견을 표현해야 해. 필요한 거 있으면 요구하고. 혹시라도 누가 때리면 연락해! 내가 가줄게."
"어, 어..."
"자율성이 중요하단 말이야. 결국엔 혼자 알아서 할 수 있어야 해. 아, 그렇지만 폭력적인 상황일 땐 경찰에 연락해. 그리고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단체도 많으니까. 나도 누가 때리면 사실 도와줄 수 없어. 경찰에 연락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정말 많아. 하지만 전화하면 언제든 도와줄게."
"그래, 고마워. 고마운데 너 취했구나..."

재미있게 떠들다 보니 시간이 한참 지나있었다. 크리스틴이 한 마디 했다.

"5 a 7이라고 하지만, 7시에 끝나는 적은 없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