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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캐나다 영주권을 얻기까지 (1) - 캐나다로 가야지!

by 밀리멜리 2022.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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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이미 살짝 선잠에 들었는데, 갑자기 남자친구가 불을 켜고 나를 깨웠다.

"일어나 봐, 이거 봐!"
"아, 왜..."
"깨웠다고 화내지 말고 이거 봐. 우리 영주권 확인메일 왔어!"
"뭐, 진짜?!"

남친의 말 그대로였다. 영주권 심사가 끝났으니, 영주권 카드에 실릴 사진과 확인 답장을 보내라는 메일이 왔다. 

영주권 신청이 승인되었습니다!

"사진만 보내면 끝이야!"
"와, 안 믿기는데!!"

믿기지는 않지만 어쨌든 남친과 손잡고 폴짝폴짝 뛰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직 꿈꾸는 것 같이 현실감이 없지만...

 

내가 처음 캐나다 퀘벡에 온 것은 2018년 6월이었다. 지금이 2022년 2월이니, 이곳에 온 지 3년 반 만에 영주권을 받은 셈이다. (아직 카드를 받은 건 아니지만!) 예상보다 빠르고, 운이 좋았다. 지금은 법이 바뀌어서 조금 더 오래 걸리고, 나는 법이 막 바뀌기 전에 막차를 탈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영주권 신청 허가를 받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드디어 받는구나!

 

내가 어떻게 캐나다에 오기로 마음을 먹고, 그 과정이 어떠했으며 어떤 도움을 받고 계획했는지 여러 글에 걸쳐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캐나다에 오기로 마음먹기까지

 

나는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통역사가 되기 위해 영어공부를 하다가 대학원에 떨어졌다. 아무래도 내 길이 아니었나 보다 싶고, 무엇보다도 영어 실력이 한창 부족했다.

대학원 입시에 실패하고, 오랫동안 영어 공부를 했는데 써먹을 데가 없다니 좀 우울해졌다. 진로를 바꿔 회사에 취직하자니 공부한 게 아깝기도 했다. 어느 회사 어느 부서에 지원해야 할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결국 어느 회사에도 지원하지 않은 채 이력서만 구인 사이트에 올려놓았다.

 

우울증이 좀 심각해질 무렵이었고, 그래서 게임에 중독되어 있었다. 6년동안 사귄 전남친과의 관계는 원만했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전남친은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으며 나에게 무척 잘해주었지만, 그 스스로도 슬픔을 꼭 감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과 함께하면 우울증은 계속되고 나 스스로의 발전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20대의 나는 그 사람을 슬픔에서 구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내가 뭐라고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뒤늦게서야 나도 그 슬픔에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었음을 깨닫고, 냉정하지만 전남친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어떻게든 생활환경을 변화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내 이력서를 본 고향의 영어학원에서 강사 구인 연락이 왔고, 서울 집을 당장 정리하고 도망치듯 부모님 집으로 피신했다. 서울을 떠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캥거루 족이라는 말도 있지만, 부모님의 물질적 정신적 도움은 나 자신이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부모님의 정서적인 지원을 받고,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자 우울증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게임은 단박에 그만둘 수 있었다. 그리고 딱 한번 전남친 소식을 들었는데, 헤어진 지 1년 만에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애도 낳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잘 되었군!

내 생활도 더 나아졌다.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 활발해졌다. 학원에서는 원어민 선생님과 한국 선생님들이 함께 일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두루두루 원만하고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이때 만난 미국, 캐나다인 동료들하고는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특히나 캐나다 사람들의 마인드가 유연하고 느긋해서 나는 자연스럽게 캐나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인 선생님들 중에서도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 유학을 하다 온 선생님이 많았는데, 여러 이야기를 듣다 보니 캐나다와 뉴질랜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영어를 할 수 있고, 공기 좋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뉴질랜드는 정보가 적어서 제외하고, 캐나다에 갈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때 캐나다에 가고 싶다고 말을 했더니, 동료들이 "넌 외국 가서 더 잘 살 거야." "선생님은 캐나다 꼭 가야 해요." 등등의 말을 해주었다. 

 

지금 생각난 것이지만,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캐나다에 오고 싶어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한국 애들 정말 불쌍해'라는 제목의 책을 사주셨는데, 작가가 어릴 때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 가서 선진국의 색다른 학교 생활을 일기처럼 쓴 글이다. 그 책을 좋아해서 몇번씩 읽다가도, 한국에 있는 그 상황이 싫어서 질투가 나기도 했다.  

지금은 절판된 책이지만,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캐나다에 간다면...'하고 마음속으로 상상하곤 했다. 캐나다와의 인연은 아마 여기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다음 글에서는 어떻게 예산을 짰는지, 왜 퀘벡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퀘벡 이민에 필수인 프랑스어를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써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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