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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점심시간 산책 - 봄이 오고 있네

by 밀리멜리 2022.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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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이지만 어쩐지 좀 축 쳐진다. 아침에도 늦잠을 자서 그런지 영 나른한 느낌이 든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그런가보다. 어제는 갑자기 온도가 18도나 확 올라가서 더웠다.

 

눈이 녹는구나

 

미렐라와 디안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미렐라는 볼 때마다 브루클린 나인나인 시리즈의 지나를 닮았다. 미렐라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브루클린 나인나인 시리즈의 지나

외모는 비슷하지만 성격은 정 반대이다. 지나 역을 맡은 첼시 퍼레티는 무척 활발하고 말이 많으며 엉뚱하지만, 우리 사무실의 미렐라는 차분하고 조용한 편이다. 나도 성격이 활발한 편은 아니라서 디안이 하는 말을 그냥 듣고 있었다.

"날씨 많이 따뜻해졌지?"
"그러네요. 이제 외투 입으면 더워요."
"어제는 집에서 일했더니 우리 개들이 난리야. 나가고 싶어서 계속 내 주위를 빙빙 돌고 책상에 앞발 올리고... 그 큰 개들이 말야."
"디안, 개들이 큰가봐요?"
"응, 예전에 사진 보여주지 않았나? 하나는 허스키야."

 

나도 강아지 갖고 싶다

그러고 대화가 끊겨서 말없이 계속 밥을 먹었다. 우리 테이블을 지나치던 한 사람이 말했다.

"여기는 왜 이렇게 조용해요? 금요일인데!"
"글쎄요, 좀 피곤하네요. 날씨 때문에 그런가..."
"아이, 나가서 좀 걷기라도 해요!"
"그래야겠어요."

그렇게 대답하고는 도시락을 챙겨넣고 코트를 입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두꺼운 패딩을 입었는데, 갑자기 날이 따뜻해져서 코트를 입었다.

정문을 나서자마자 세 명의 여직원들이 걷고 있었는데, 아까 '나가서 좀 걸어라'고 말했던 그 사람과 딱 마주쳤다.

"어! 너 나왔네, 정말 내 말대로! 혼자서 걸어?"
"응, 사무실 주변 좀 걸으려고."
"그래, 좋은 산책해! 이따 보자!"

확실히 좀 걸으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사무실 2층 구석에 비둘기 둥지도 발견했다.

 

비둘기 둥지


정말 대충 만든 둥지네. 어제부터 생긴 것 같다. 여기는 비상구 바로 옆쪽 문인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다. 내가 문을 열 때마다 비둘기 두 마리가 놀라서 후두둑 날아간다. 놀래켜서 미안하지만...

날이 흐리긴 했지만 밖에 나오니 공기가 맑고 좋다.

 

새들 중의 깡패 갈매기

날이 따뜻해지면 갈매기가 귀신같이 돌아온다. 봄이 온다는 신호 중 제일 정확한 게 갈매기인 것 같다.

 

추울 땐 까마귀만 보였는데, 날이 따뜻해지니 까마귀는 어디론가 가고 갈매기가 자기 세상인 것처럼 영역을 차지했다. 갈매기 떼가 끼룩끼룩거리는 게 꽤 시끄럽다. 갈매기, 비둘기, 까마귀들 중에 갈매기가 제일 성격이 사납고 제멋대로다.

 

움트는 나무

나무에도 새싹 움이 트기 시작했다.

여전히 녹지 않은 눈과 얼음이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 다 녹아서 시냇물처럼 졸졸 소리가 난다.

 

얇은 얼음 밟으면 재밌다

바닥에 녹고 있는 얼음을 밟으니 파작파작 소리가 나서 재미있다. 혼자 얼음깨고 놀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다 끝나버렸다. 서둘러서 사무실로 돌아갔다.

 

점심시간 다 끝났네!

그러다가 트럭 운전하는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할아버지는 마치 산타처럼 흰 머리와 풍성한 흰 수염을 갖고 있었다. 내가 '봉주' 하고 인사하니 할아버지가 날 잠시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20킬로미터야!"

할아버지는 트럭 운전석에 오르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잉?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이 길, 제한속도가 시속 20미터라고. 너무 빨리 걷는 거 아니야?"

 

제한속도보다 빨리 안 걷게 조심하라구!

사무실에 들어가는 게 늦을까 봐 빨리 걸었더니, 할아버지가 농담을 한 거였다. 할아버지랑 한바탕 크게 웃고 점심시간이 끝났다. 산책하기 좋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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