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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How are you?"라는 질문 앞에 얼어붙는 나

by 밀리멜리 2020.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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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영어를 처음 접할 때 배우는 표현이 바로, Hi, how are you? 일 것이다. 영어 교과서 맨 앞장에 쓰인 가장 기초적인 표현인데, 그만큼 영어 사용자들은 이 말을 시도때도 없이 쓴다.

 

 

농담하는 게 아니라, 나는 이 질문이 너무나도 어렵고 당황스럽다. 한국에서 자라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외국에 와서 그런지, 나는 이 how are you가 너무 낯설다. 직역하면 '너 어때?'인데, 일단 한국어로 먼저 생각하고 대답하게 되는 버릇이 있는지라 대답이 빠르게 나오지 않는다.

 

"How are you?" 

 

'나? 어떠냐고? 나 오늘...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사실 좀 우울한 일이 있었지만 그걸 너한테 이야기할 정도로 친하지 않은데... 어쨌든 전반적으로 괜찮아' 

 

라는 생각을 혼자 하게 되면서, how are you에 대답할 시간을 놓치게 된다.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본의아니게 대답을 안하고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사실 아직도 좀 그렇다. 아마 상대방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인사하고 헤어지거나, 아니면 다음 대화주제로 넘어가게 되는데, 그때서야 나 자신도 '아! 나 방금 저 사람의 말에 대답을 안했구나!'하고 뒤늦게 깨닫는다. 본의아니게 무례한 짓을 저질렀지만, 또 가던 길을 다시 돌아와서 '아참, 아까 물어본 거 말인데, 나 괜찮아! 물어봐줘서 고마워'라고 말하기엔 민망하기 짝이 없다.

 

물론 질문을 듣자마자 fine, thank you. and you? 라고 외워서 답하는 게 차라리 낫다. 나는 그 대답이 너무 기계적이라고 생각되어 good, thanks. 를 쓰려고 하는데, 별 대단한 차이는 없다. 괜히 다르게 대답하려다 타이밍만 놓쳤다.

 

내 기분이 어떤지 구구절절히 말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상대방의 안부를 물어봐 줘야 하는 의무감에 조금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하와유?' 나한테는 공격이 따로 없다. 이 말에 대답하는 게 싫어서 나는 자주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낯선 사람을 만나도 Hi, how are you? 라고 먼저 묻게 되는 건, 내가 사교성이 좋아서가 아니라 먼저 대답하기 싫어서이다 ㅋㅋㅋㅋㅋ

 

재미있는 건 이 물음에 not so good. 혹은 so so. 라는 대답을 하는 사람을 이곳에서는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많이 봤다) 모든 캐나다인이 그렇다고 말할 순 없지만, 어쨌든 이 물음에 자기 기분이 좋지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대화가 진행되고 나서야 사실 좀 안좋은 일이 있었어, 라고 말하는 사람은 있어도, 첫인사부터 좋지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몇번 사람들과 맞닥뜨리고 알아낸 것은, 이 "how are you"가 정말 내 기분을 묻는 게 아니라, hi에 이어지는 인사 그 자체라는 것이다. 정말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hi는 그냥 '나 좀 봐, 나 여기 있어'라는 느낌이고, how are you가 진짜 우리말의 '안녕하세요?'로 번역되어야 할 것 같다. '안녕하세요?'라는 물음에 '안녕하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 않은가. 'How are you'도 그렇다. 그래서 hi만 쓰고, how are you를 쓰지 않으면 약간 무례한 느낌조차 든다.

 

좀 더 친해지면 what's up? 이 나온다. How are you와 똑같은 뜻이지만 친한 사람들끼리 쓴다. 이 말을 들었을 때도 how are you와 똑같은 부담감을 느꼈으나, 역시 또 good 해버리면 그만이다.

 

아니, 마트에서 캐셔 앞에 물건을 올려놓더라도 너 오늘 하루는 어떠냐고 물어봐주고 내 기분을 말해야 하니, 다정하긴 한데 나는 아직 그게 좀 부담스러운 것 같다. 언제쯤이면 익숙해지려나?

 

프랑스어 문화권인 이곳에서는 'How are you?' 도 쓰지만, 상대방이 불어가 더 편한 경우에는 'Comment ça va (꼬멍 싸바)'를 쓴다. 그리고 그걸 줄여 싸바? 라고 묻는다. 그럼 대답은 싸바! 하면 된다. 그게 우리나라의 '안녕?' '안녕!'같아서 더 정감이 가고 편하다.

 

불어하는 친구를 만나면 일단 처음엔, 봉주!/살류! 하고 인사를 하고나면 어김없이 '싸바?' 공격이 들어온다. 하지만 긴장하지 않고 간단하게 '싸바!' 말해주면 된다. 'and you?' 라고 물을 필요도 없다. 그것도 '싸바?'로 퉁친다.

 

'싸바? 싸바싸바~ 위 싸바~ 에 뚜와, 싸바?' 만나기만 하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하는 모로코 친구가 있는데, 정말 긴장이 풀리고 좋다. 싸바로 다 퉁쳐서 너무 좋다. 불어는, 그 뒤로 긴 대화가 이어지면 그게 문제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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