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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마지막 가을날 즐기기 - 오카 비치(Oka Beach)와 캐나다 아빠의 아이 달래는 법

by 밀리멜리 2020.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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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가을날이라고 하니 '벌써?'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곳은 꽤 추운 지역이라 겨울이 빨리 온다. 오늘을 기점으로 3일간 비가 온다고 하니, 그 이후엔 아무래도 겨울이 올 것 같다. 운이 좋다면 다음 주 일요일쯤에 화창한 가을날을 마지막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고, 운이 나쁘다면 화창한 가을은 이미 끝났을지도 모른다.

 

Oka Beach

몬트리올에서 50분 남짓 서쪽으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오카 국립공원이 나온다. 단풍이 절정이라,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데도 양옆으로 펼쳐진 단풍숲들이 <빨강머리앤>에 나오는 숲 속 같아서 무척이나 황홀했다. 단풍이 든 나무와 붉은 숲도 아름다웠지만, 그 숲 속 사이로 흰색 칠을 한 별장 같은 집들이 자리 잡고 있어 이런 곳에는 누가 살까 무척 궁금해졌다.

 

Le Manoir du Rocher

사진을 직접 찍지 못해 비슷해 보이는 별장 사진을 가져왔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삶이란 어떨지 정말 궁금해졌다. 나중에 이런 곳에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다가, 현실적인 문제까지 떠올랐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외롭지 않을지, 슈퍼도 가깝지 않을테고, 여가 생활이나 수업을 듣고 싶으면 차를 타고 40분씩 걸려 몬트리올 시로 와야 할 테고, 관공서 업무도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자연이 주는 즐거움이 더 클 것 같아서, 나중에 은퇴하고 도시생활이 필요 없게 된다면 이런 곳에 살고 싶다.

 

Ma poule Mouilée 식당에서 테이크아웃해서 가져온 치킨과 푸틴

한국 치킨이 그리울 때마다 먹는 포르투갈식 치킨을 점심으로 싸왔다. 이 식당은 내가 몬트리올 식당 중 최고로 치는 곳인데, 갈 때마다 테이크아웃하려는 사람들로 줄을 서는 곳이다. 맛도 맛이지만 싼 가격에 양이 무척이나 많아서 다 먹을 수가 없다. 특히나 왼쪽 상단의 푸틴에는 감자튀김, 치즈와 치킨, 소시지가 들어있어 가장 작은 사이즈를 샀는데도 양이 푸짐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해서 배고픈 참이었는데, 단풍 구경이고 뭐고 벤치를 찾아 일단 먹기부터 시작했다. 

 

배를 채웠으니 느긋하게 해변가를 걷다 적당한 곳에 캠핑의자를 가지고 와서 경치를 감상했다. 아참, 이곳은 beach라고 불리우지만 바닷가가 아닌 생 로랑 강가이다. 그러니 강변가라고 부르는 게 더 맞겠다. 그냥 멍하니 파도치는 강을 보고 있었는데, 내 앞에 형제로 보이는 꼬마아이 둘이 모래놀이를 하고 있었고, 그 부모는 프리즈비를 하며 놀고 있었다. 2살, 4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 형제들이 너무 귀여워서 계속 바라보고 있었는데, 2살짜리 동생이 젖은 모래를 잡고 형의 얼굴에 정통으로 모래를 퍼부었다!

 

형은 얼굴이 모래범벅이 되어 "앙투완!!!!" 하며 빼액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도 웃겨서 혼자 큭큭거렸다. 아이들의 아빠는 프리즈비를 하다 말고 급히 첫째에게 달려가 그 아이를 달래주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차분하고도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 배울 만하다고 생각된다. 아빠는 아이가 엉엉 울자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차분하게 아이에게 설명했다.

 

"자, 괜찮아. 얼굴에 모래가 묻었구나. 이 물티슈를 가지고 네 얼굴을 닦아줄 거야. 별일 아니야. 여기 가방에 물티슈가 있지? 이렇게 닦으면 다 없어진다."

 

"그치만 앙투완이, 앙투완이..!!!"

 

"앙투완이 너한테 모래를 묻힌 건 맞아. 그래서 네 얼굴에 모래가 묻었구나. 그리고 나는 이 물티슈로 모래를 다 닦아줬어. 별거 아니지? 앙투완이 너를 미워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니고, 너도 다치지 않았어. 다 괜찮아."

 

그러자 첫째아이는 금방 울음을 그쳤다. 아빠가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아이가 빽빽거리며 우는 것을 보고 아빠도 당황한 것이 분명했다. 그치만 아이를 혼내는 대신, 아이가 겪고 있는 충격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그것이 별것 아니라는 걸 알려준 후, 자신이 어떻게 이 사건을 해결할지 차분하게 설명을 해 주는 모습이, 마치 어른을 달래듯 아이를 달래는 것 같아 놀라웠다.

 

만약에 나라면 먼저 안아주고 등을 토닥이며 별것 아니라며 달랠 것 같은데, 그랬다면 아이는 자기가 당한 것이 서러워서 더 울고 동생을 미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아빠는 아이를 달래면서 아이를 만지지도 않고, 안아주지도 않으면서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고, 아이는 정말 그것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형은 자신에게 모래를 묻힌 동생을 미워하지도 않게 되었고 금방 진정할 수 있었다.

 

아이가 울면 바로 토닥거리고 울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부둥거려주고 달래주는 양육방법도 장단점이 있을 것이고, 이렇게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달래주는 양육방법도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곳에서 내가 목격한 양육방법은, 아이 입장에서 분명 동생이 잘못한 건 맞지만 동생을 덜 미워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오카 비치 캠핑장

 

일어나 캠핑장을 구경하며 단풍을 즐겼다. 코로나 때문에 캠핑은 중단되었지만 사람의 발길이 적은 덕분인지 숲이 더 울창해 보였다. 해변가를 따라 걷다 보면 이곳의 명소인 소바진 호수가 나오는데, 이 호수는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아름답게 나온다. 

 

Lac de la Sauvagine

이 소바진 호수가 너무나도 조용하고 아름다워서 잠시 아무말 않고 쳐다보기만 했다. 나중에야 친구들과 서로 내가 더 잘찍었니, 아니 내가 더 잘찍었니 하며 투닥거리긴 했지만, 정말 아무렇게나 찍어도 아름다운 풍경이 나왔다. 

 

올해 마지막으로 화창한 가을날일지도 모르는 때에, 단풍국에서 절정인 단풍을 보게 되어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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