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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집안일을 해야 하는 이유 - 목적이 있는 삶

by 밀리멜리 2020.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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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를 보니 빨래가 쌓여 있고, 재활용품을 내다 놓는 통도 가득 찼다. 아침을 먹고 난 설거지도 그대로이고, 요리를 하고 나서 남은 채소도 부엌 카운터에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눈앞에 널려있는 집안일을 분명 두 눈으로 확인했지만, 어깨가 아프다는 핑계로 그걸 미뤄버렸다.

 

집안일은 귀찮다. 어렸을 땐 엄마가 다 알아서 해주었으니 그게 귀찮은 일이었다는 걸 모르고 지냈다. 이제 와선 집안일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건 알지만, 아무래도 귀찮다. 지금 꼭 안 한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니, 미루기도 쉽다. 내가 집안일을 하는 이유는 더러운 꼴을 보기 싫어서, 정말 돼지우리가 아니라 인간으로 살고 싶어서 집안일을 하기 싫지만 억지로 했던 것 같다.

 

미루던 세탁과 설거지를 하고, 재활용품을 버리면서, 며칠 전 봤던 테드X 토크의 뇌를 회복시키는 방법이라는 영상이 떠올랐다.

 

뇌를 회복시키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이 뇌신경학자의 말은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나도 우울증에 시달리고 싶지 않고,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살고 싶지만, 그냥 그런 삶을 동경할 뿐이지 어떻게 하면 긍정적으로 변하는지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이 영상을 해석하고 포스팅하면서 받은 깨달음이 내 삶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날까지도, 공감하고, 감사하며 살라는 메시지는 이해가 가지만, 목적이 있어야 하는 삶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의 밖이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세탁을 하는 것도 목적이 있는 삶으로 만들 수 있는가?

 

이 말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싫지만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고, 세탁도 귀찮지만 사람처럼 살려면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그런 집안일에 무슨 목적이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집안일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운동을 하는 이유와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말 행복하게 살려면, 건강한 몸을 가지는 것은 필수적이다. 불행하지 않으려면 일단 아프지 말아야 한다. 건강은 돈보다 중요하다. 아프지 않아야 일단 돈이라도 벌 것이 아닌가. 아프면 돈도 못 버니까. 그래서 우리는 시간과 돈을 내어 운동을 하고, 산책과 등산을 하고 자전거도 타고, 헬스장과 수영장에 간다. 영양제도 챙겨 먹고, 인스턴트나 배달음식을 즐기지만 그걸 먹고 난 후에는 좀 더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바이러스에 대비해 마스크를 항상 쓰고 건강정보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 건강은 중요하니까.

 

집안일도 그와 마찬가지인 것 같다. 먼지를 쓸고,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도 우리 삶의 노폐물을 버리는 행위와 같다. 혈관에 노폐물과 나쁜 콜레스테롤이 쌓이면 그것이 혈관의 흐름을 방해해 우리 건강을 해치듯이, 집안에 쌓인 먼지와 쓰레기도 우리의 마음을 해칠 수 있다. 배달음식 대신 요리를 하는 것이 건강에 더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집안일 해야 하는데...'라면서 미루는 죄책감과 '집안에 사는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주겠지'라고 미루는 것은, 우리 마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당장 몸이야 살짝 편하겠지만, 미룬다는 죄책감과 스트레스는 뇌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집안일의 목적이란, 결국에 나를 더 돌보아서 행복하게 하기 만들기 위해서인 것 같다. 집안일이 끝나고 나서 즐기는 홀가분함과 깨끗함, 차분함이 좋다. 그 깔끔함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는 집안일을 한다. 밀려있는 집안일을 보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집안일을 한다. 이렇게 목적을 갖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집안의 쓰레기 하나 버릴 때마다 내 몸의 혈관 노폐물이 치워지고, 내 몸과 뇌가 회복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행복하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쓰레기를 버리러 가다가도 음악이 들리면 절로 춤이 나올 만큼 즐겁다. 오, 지금 내 몸에 이득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거기다가 신나게 음악까지 나온다고? 온 세상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격려해 주는 것만 같다.

 

나는 집안일 초보이고, 육아라고는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어리석고 어린 내가 집안일의 목적 어쩌고 하는 것은 가소로워 보인다. 우리 엄마가 이 글을 본다면 코웃음을 칠 지도 모른다. 만약 아이가 있다면 하루 종일 정신이 없고 눈코 뜰 새 없이 일을 해야 할 테고, 그 일이 끝나지도 않을 것이다. 집안일이 끝나지 않으니 그 이후의 여유로움을 즐길 순간도 적다. 일을 하면서 집안일도 하고 육아도 해야 하는 워킹맘들은... 너무나도 존경스럽다.

 

'집안일을 하는 건 나를 돌보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건, 우리 시대의 워킹맘들에게 말하기엔 너무나 사치스러운 아이디어일 수도 있겠다. 나는 워킹맘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워킹맘을 할 지도 모르는 미래의 내가 와서 이 글을 본다면 '이게 웬 흑역사야ㅋㅋㅋ'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부끄러운 흑역사를 만들어 내더라도, 나는 내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집안일을 어머니나 배우자에게 미루지는 말아야겠다.

 

이런 나도 언젠가 워킹맘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많이 생각해 봐도 정말 모르겠다. 내게 있어서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보다 아이를 낳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결혼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느냐 마느냐는 나에게 중요하다. 아무 결론도 내릴 수 없어서, 그리고 아무 정보도 없어서, 나는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은 잠시 미룬다.

 

또 이야기가 밖으로 새버렸지만, 집안일을 하는 목적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데이빗슨 박사의 그 말. "쓰레기를 버리고, 세탁을 하는 것도 목적이 있는 삶으로 만들 수 있는가?" 그 박사님은 아마도 집안일 하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자신도 집안일을 몸소 잘 실천하는 좋은 사람일 것만 같다. 집안일이라는 귀찮은 작업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다니, 정말 놀라운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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