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발견했다.
뭔가 했더니, 길거리 즉흥 연기 퍼포먼스였다.
다 알아듣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와하하 웃길래 웃긴 장면인가보다 하고 구경했다.
그래도 조금 알아들은 대사는...
"벌써 올라온거야?"
"그래! 여기가 내 지붕이야. 멋지지?"
"오, 멋진데! 난 좀 더 올라가봐야겠어!"
이 공연은 미리 쓰여진 대사 없이 모두 즉흥으로 연기했다고 한다.
사진으로는 잘 안보이지만 3월 말인데도 너무 추웠다.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쌀쌀해서 집에 가야지 싶었는데 연기자들이 마이크에 대고 이런 말을 했다.
"공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내에 빨간 장소로 가시면 다과와 음료가 준비되어 있으니 즐기세요!"
잉? 다과와 음료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
군중들을 따라 옆 건물로 들어갔다. 바로 옆 건물은 예술의 전당 비슷한 건물인데, 오페라와 뮤지컬 공연이 열리는 곳이다.
정말 '빨간 장소'에 도착했는데, 빨간 아크릴판을 벽으로 세운 공간이었다. 입구에서 입장권을 받으면서도 '여기 들어가도 되나' 하고 얼떨떨해졌다.
무슨 행사가 열리는 모양인데, 뭔지도 모르고 일단 들어왔다. 알고보니 연극계 사람들이 모여 시상식을 하는 모양인데, 사람이 적어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초대한 모양이다. 시상식 내부에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그제야 좀 안심하며 구경했다.
테이블 하나에 자리를 잡고 바게트빵과 주스를 따라 왔다. 남친이 그걸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넌 여기 뭐하는지도 모르고 먹으러 왔냐?"
"쳇, 그래. 먹을 거 준다 해서 왔다. 무슨 연극 시상식인 거 같은데? 아무튼 너 그렇게 말하려면 먹지 마."
남친은 여전히 시상식 자리에 들어와도 되는 건지 불안했던지 계속 행사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오렌지주스를 한 잔 다 들이킨다.
"아, 설탕 덩어리네."
"다 마셔놓고 불만이야, 왜."
"우리 바꿔 마시자."
하더니 빈 오렌지주스를 나에게 주고 내 포도주스잔을 가져가서 마신다. 아니! 그럴거면 불평을 하지 말던가! 🤣
아무튼,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상받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뭐
이 사람은 연극계에서 50년을 일했다고 한다. 와, 엄청난 커리어다.
그런데 수상소감이 넘 길어서 좀 지루했다. 수상소감을 적은 종이가 A4용지로 6장은 되는 것 같았다.
진행자들도 관객들이 지루해하는 걸 느꼈는지, 다음 수상자를 소개할 땐 퀴즈를 내며 관객참여를 유도했다.
"다음 수상자는 마농입니다! 마농이 도대체 누굴까요?"
"하하하하하!"
"우리 마농에 대해서 추측해봅시다. 마농은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 모두가 공동체니까요, 함께 추측해 봅시다. 아무나 답해보세요. 마농은 누굴까요?"
관객에게서 한 사람씩 대답이 나오기 시작했다.
"친절한 사람!"
"열심히 일하는 사람!"
"시끄러운 사람!"
"오, 그렇죠! 친절하고, 열심히 일하고, 시끄럽고... 또 어떤 사람일까요? 거기, 우리 젊은 무슈!"
진행자가 네다섯살 되어 보이는 아이에게 "젊은 무슈"라고 부르니, 아이가 대답을 한다.
"마망(엄마)."
이 귀여운 대답에 모두가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 아이는 수상자 마농 씨의 아들인 것 같았다. 나도 아이가 너무 귀엽고, 질문에 걸맞는 가장 정확한 답이라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연극계 사람들이라 그런지 이런 즉흥적인 연기와 진행이 익숙한 모양이다.
시상식이 끝나고, 빵과 치즈, 소시지와 과일을 가져다 먹었다.
음식도 맛있고, 연극계 시상식에 참가한 것도 너무 신기한 경험이라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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