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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지각한 날, 차분한 버스 운전수 아저씨

by 밀리멜리 2022.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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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평범한 하루다. 별 일 없이 그럭저럭 지나갔다.

 

하지만 아침만 해도 조용하고 평범한 하루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늦게 나와서 10분 지각을 했기 때문이다. 으아!! 😫

 

집을 나서자마자 지각이라는 생각에 조급해서 발을 동동거리며 초조해했는데, 지나고 나니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 감정은 한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각했을 때 내 마음은 어떠했나? 짜증이 나고, 몸이 움츠러들고, 뒷골이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해서 시계만 보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버스도 4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저절로 욕이 나왔다. 

 


버스가 몇 분씩 늦게 도착하는 건 흔한 일인데, 내가 지각할 상황이니 그건 용서하기 힘든 잘못처럼 느껴졌다. 초조하게 시계와 도로 저편을 번갈아보며 버스가 언제쯤 도착할지 계산했다. 그런다고 더 일찍 오는 건 아닌데.

늦게 도착했을 경우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상상했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변명을 하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결국 버스가 도착하고, 난 굳은 표정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다음 정거장에 정차하고, 어떤 행색이 초라해 보이는 남자가 탔다. 그 승객은 운전석 옆에서 가만히 서서 계속 자기 가방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승객이 그렇게 멍하니 서 있자 버스 운전수가 카드를 찍으라는 신호로 아크릴판을 통통 쳤다. 그러자 그 남자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지금 카드 찾으려고 하잖아! 당신은 뭐가 문제야?!"

버스 운전수는 별로 동요하지 않고 대답했다.

"출발해야 하니 자리에 앉아서 찾으시오."

그 말을 들은 승객은 얌전히 옆자리에 앉아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러고 두세 정거장쯤 가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찾아보니 카드가 없어. 적어도 카드를 살 수 있게 지하철역에서 내리게 해줘."

아마 처음부터 버스카드를 갖고 있지 않고 그냥 탈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들은 운전수도 그제야 뭐라고 한 마디 했다.

"당신 지금 내 시간도 낭비하고, 당신 시간도 낭비하고, 다른 사람 모두의 시간을 낭비했잖아."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들은 순간 지각 때문에 짜증났던 마음이 풀렸다. 왜일까?

원래 늦게 나온 내 잘못으로 지각했지만, 다른 사람 탓을 할 핑계가 생겨서였을까? 나는 화난 감정에서 벗어나 크게 심호흡을 두어번 하고 평정심을 되찾았다. 이제 될 대로 되라, 늦으면 늦지 뭐.

 

버스 안에서 보는 창 밖

지각을 하는 건 나만의 걱정이었던 건지, 아무도 내가 출근하는 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심지어 사람들은 내가 왔는지 안왔는지조차 관심이 없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걱정했던 걸까?

무엇보다도 인상깊었던 것은 운전수의 차분한 태도였다. 자기한테 소리지르는 사람에게 똑같이 맞대응하지 않은 것. 그 차분함이 초조했던 나에게도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제 지각은 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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