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팀원들 모두 바쁘다. 아무래도 바쁜 철인가 보다.
회의 게시판에 각자 바쁜 정도를 이모티콘의 색으로 표시하는데, 얼굴이 빨간색이면 너무 바쁘다, 주황~노랑이면 적당히 바쁘다, 초록색이면 한가하다는 뜻이다.
난 이걸 보면서도 몇 달 동안 색깔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다. (아마 알려주었던 것 같지만 프랑스어의 장벽으로 못알아듣고 넘어갔지 싶다) 덕분에 바쁠 때도 계속 초록색 얼굴로 한가해요~를 표시하고 있었다.
신입사원에게 주는 조언이라는 게시물에서 항상 바쁜 척을 해야한다는 팁을 본 적이 있다. 그 조언처럼 한가해도 바쁜 척을 해야 하는데, 나는 반대로 바쁘면서 한가한 척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마리 크리스틴의 일이 이래저래 나에게 넘어왔다. 협력업체에 편지를 쓰는 일이라든지, 계약서의 초고를 쓰는 일이라든지... 조금 골치가 아팠지만 그래도 프랑스어를 많이 배울 수 있는 일이었다. 공무원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평소에 계약서나 편지를 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성격상 일을 미뤄두기 싫어서 바로 시작했다. 일을 시작할 때는 녹차나 커피를 한 잔 준비해 두고, 유튜브에서 '집중 잘 되는 음악'을 찾아 틀어 놓는다. 사무실에서 내가 원하는 음악을 틀 수 있어서 정말 좋다.
3~4시간쯤 하니 마리-크리스틴이 준 일이 모두 끝났다. 속이 시원하다! 속은 시원하지만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목이 아프고 어깨가 결린다.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 싶어서 마리-크리스틴의 사무실로 놀러갔다.
"안녕! 좀 괜찮아?"
"응, 괜찮아. 넌 어때, 피곤해?"
"화면 계속 봤더니 조금 피곤하다. 지금 뭐해?"
"계약서 고치고, 회의 소집하고... 아, 그리고 평생교육도 듣고 있어. '컴퓨터 앞에서 건강 지키기!'"
"오, 건강 중요하지."
"여기 보니까 일하면서 잠깐잠깐 하는 휴식이 중요하대. 내가 자료 좀 프린트했는데 말이야. 이거 보고 좀 해보자."
마리-크리스틴이 프린트한 자료에는 간단하게 몸을 풀 수 있는 스트레칭 자세가 있었다. 나도 하나 아무거나 집어서 해보기로 했다.
나는 4번 자세를 따라 벽에 팔을 대고 어깨를 펴는 자세를 했다. 설명을 읽으니, 30초간 유지해야 한다고 써 있었다.
"으음.. 30초 지났나? 집중이 잘 안되네."
"가만 있어봐. 내가 초 세줄게. 앙 엘레팡, 드 젤레팡, 트와 젤레팡, 꺄텔레팡...."
엘레팡(éléphant)은 코끼리라는 뜻인데, 음절이 꽤 길고 악센트가 있어서 발음하는데 적당히 오래 걸린다. 그러다 보니 초 세는 데 쓰이는 모양이다.
미국 애들은 원 미시시피, 투 미시시피, 쓰리 미시시피 하며 미시시피를 쓰던데... 여기서는 엘레팡을 쓰는 모양이다. 한국어에는 초 셀 때 쓰는 단어가 없나? 미시시피나 엘레팡처럼 3~4음절은 되어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어깨 풀고 목 풀고 나니 훨씬 좋다. 평생 교육 좋네, 이런 자료도 주고.
일하면서 조금씩 휴식을 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옛날 한국에서 번아웃을 겪고 나서야 깨달은 진리다. 나는 한가지에 몰두하면 몇시간이고 빠져버리는 편이어서, 일을 끝마치고 나면 진이 빠진다. 그러고 나면 아무것도 행동으로 옮기기 싫고,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다. 집에 들어가 그냥 누워 있거나 인터넷만 하게 된다.
그렇게 지치는 것을 막으려면 애초에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중간중간 5분씩 쉬어주어야겠다는 걸 깨달았다. 알면서도 실천이 잘 되지 않는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일을 하다 보니 계속 쉬지 않기도 하고, 어떨 땐 5분만 쉬는 게 너무 아쉬워서 더 길게 쉬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 집중력이 사라지고...
아무튼, 휴식은 중요하다는 것이 내가 힘든 경험 이후로 깨달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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