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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몬트리올 일상다반사

트릭시 마텔의 드래그퀸 코미디 쇼 관람한 후기

by 밀리멜리 2022.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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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축제가 끝나는 걸 그냥 두고볼 수만은 없어서 코미디 공연 하나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이번 여름 축제 중 제일 가고 싶었던 건 아프리카 음악 축제인데,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끝나버렸다. 아, 아프리카 축제에 맛있는 음식 나오는데... 아쉽다! 코미디 축제는 하나라도 봐야지!

 

금요일 저녁에, 무료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야 도착했더니 관객석이 꽉 차서 들어갈 수가 없다.

 

운좋게 관객석 한쪽 구석에 자리가 남아 겨우겨우 끼어 들어갔다. 

 

나무와 사람에 가려서 잘 안보이지만, 이 정도는 감지덕지!

 

자세히 보니, 드래그 퀸의 공연이다!

 

드래그 퀸은 화려한 복장과 화장을 한 여장남자라고 한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퀘벡에서는 드래그 쇼가 엄청나게 인기가 많다.

 

이 드래그퀸은 넷플릭스 유명 쇼인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에 출연해 유명한 사람이란다. 이름은 트릭시 마텔. 그 쇼 한번도 못봤는데, 아쉽네! 

 

넷플릭스에서 코미디쇼를 보는 걸 좋아하는데, 실제로 보니 함성이 장난 아니다. 다만 말이 어려워서 알아듣기가 힘들다.

 

"안녕 몬트리올~! 나 아는 사람 있어?"

 

(꺄아아아---)

 

"그럼 나 처음 본 사람은?"

 

(와아아아---)

 

"노우, 노우. 아! 여기 몬트리올이니 프랑스식으로 농농농... 이라고 해야겠군. 내 개그가 워낙 쎄서 팬들이 다 떠나갔어. 내 팬들은 이 앞쪽에 다섯 명 뿐이라고."

 

 광장에 거의 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는데, 팬이 다섯명 뿐일리가 ㅋㅋㅋ 그런데 개그가 수위가 높고 쎈 건 정말이었다. 

 

몬트리올 사람의 우스꽝스러운 프랑스식 영어 발음을 놀리는 것을 시작으로, 모두까기가 시작되었다.

 

게이 놀리고, 레즈비언 놀리고, 백인 놀리고, 부자들도 놀린다.

 

"어, 저기 내 팬들이네! 너희 틴에이저 바이섹슈얼 레즈비언이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꺄아아아아아~ 하는 환호가 들린다.

 

"잠깐, 우리 쇼 청소년 관람 불가인 거 알지? 여기는 몇 살부터 법적 성인이야? 18살?"

 

(16살!!)

 

"뭐? 16살이라고? 역시 빠르구만!"

 

헐... 이건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게이들은, 흠, 보여주는 걸 좋아해. 그렇다보니 드레스도 화려하게 입지. 그치만 게이 패션 보면 참 이상해? 싸이코 연쇄살인마가 정상인인 척 애쓰는 것처럼 입는다니까."

 

여기서도 웃음이 파하하하 하고 터졌다.

 

"맨 앞에 자기들, 무대로 나와 봐! 어서!!"

 

두 명의 관객이 무대로 나왔다.

 

"자기는 왼쪽에서 이 옷 잡아당기고, 자기는 오른쪽에서 잡아당겨 줘! 알겠지?"

 

"짜잔!"

 

하고 관객이 양옆에서 옷을 잡아당기자 긴 드레스가 펼쳐져 나왔다.

 

트릭시 마텔은 이번 쇼 한번에 반짝반짝하고 화려한 드레스를 6~7번 정도 갈아 입은 것 같다.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자기가 작곡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나는 여기 왜 있지~🎶 무대가 좋아서? 아니! 관객이 좋아서? 아니! 아무튼 너희한테 잘보이려고 여기 있는 건 아냐~🎵 너희한테 잘 보이려고 여기 있는 건 아냐~🎵 사실 제시 아이젠버그에게 잘 보이려고 부르는 거지~ 제시 아이젠버그~"

 

이 아무말이나 하는 것 같은 노래 덕에 또 관객의 웃음이 터져나왔다. 뜬금없이 제시 아이젠버그라니...

 

그런데 다음 순간 정말로 스크린에 제시 아이젠버그가 나타나 영상 메시지를 보내왔다.

 

"안녕, 트릭시. 내 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말 영광이에요. 저도 트릭시의 팬이거든요."

 

실제 제시 아이젠버그의 목소리가 들리니 관객들이 놀라서 웅성웅성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힙합 노래를 부르고, 마지막엔 에미넴 노래를 불렀다. 유명한 노래가 나오니 관객들이 따라부른다.

 

"어, 저기 봐! 에미넴 노래 하니까 백인들 좋아 죽는 거 보게?"

 

나도 여기서 웃음이 푸하하 터졌는데, 옆쪽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정말 무표정인 걸 보고 갑자기 무안해졌다. 

 

즉석으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한다.

 

"거기~ 2층에 부자 놈들아~ 가난한 사람 등쳐먹고 거기 앉으니 좋냐? 부자 놈들아~ 아, 걱정 마! 쟤네들은 내가 이렇게 까도 신경도 안쓸거야. 2층에 앉아서 마티니나 홀짝홀짝 처먹는 거 보게?"

 

 

처음으로 본 드래그 퀸 공연이라 정말 신기했다. 더 많이 알아들으면 좋을 텐데...

 

트릭시 마텔이 한창 노래하다가 갑자기 밴드를 멈춘다.

 

"스탑, 스탑, 스탑! 저기 무슨 상황이 일어난 거 같은데? 응? 누가 쓰러졌어? 여기 빨리 구급대원 와주세요! 나도 공연은 많이 나와봤지만 의료 응급상황에 대한 건 연습 안해봤다고. 메딕 왔어요? 그래, 그래, 거기 길 좀 터주고. 우리 메딕에게 박수 보내주세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공연장 바로 옆에 대기하고 있던 소방차와 구급대원 덕에 1분만에 상황이 정리되었다. 쓰러졌던 사람은 다행히 괜찮아 보였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신나는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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