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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영상리뷰

옛날드라마 허준 리뷰 - 진정 괴로운 이유는

by 밀리멜리 2022.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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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저녁시간에 옛날 드라마 허준을 보고 있다. 덕분에 다짐했던 디지털 디톡스가 생각처럼 잘 안 된다.

아무튼 옛날 드라마를 보니 재밌다! 시청률이 60%가 넘었다는데 과연 그럴만 하다 싶다. 

총 편수가 60화가 넘는다. 그만큼 이야기의 흐름도 천천히 진행되고, 주인공 이외의 스토리도 엄청 길고 세세하게 펼쳐진다.

그러다보니 허준이 의원이 되기 전부터 이야기가 초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놀랐을 것이다. 허준이 이렇게 개망나니 양아치에 찌질이라니!

 


아마 소설적 허구가 많이 쓰였겠지만, 그래도 의원이 되기 전 허준은 밀수꾼에 사기를 치고 걸핏하면 사람을 때리는 무뢰한이다. 이런 게 주인공이라니... 

아마 요즘 이 드라마가 나왔더라면 초반 시청자반응이 엄청 안좋았을 것이다. 고구마가 너무 길다! 요즘은 이렇게 주인공의 성장을 진득하니 기다리는 작품은 거의 없어 보인다.

허준의 이야기가 가장 재밌긴 하지만, 요즘은 한창 삼적대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고 있는 참이다. 조연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이렇게 다크하고 절절하다니!

삼적대사는 의술이 뛰어나지만 법복을 입고 떠돌아다니며 대풍창(한센병) 환자를 치료하러 다닌다. 원래는 궁궐 내의원의 유망한 의원이었지만, 자신이 아끼는 아들을 잃고, 그에 대한 분노로 다른 대풍창 환자 부부를 죽인다.

 


대풍창 환자의 아들이 두려움에 떠는 것을 보고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깨닫게 된 삼적대사는 이후 내의원을 그만두고 평생 속죄하며 대풍창 환자를 돌보며 살아간다. 


자신이 죽인 부부의 아들을 입양해 아들로 삼고 상화라는 이름을 주었지만, 상화는 양아버지에게 증오를 품고 매일 밤 북을 친다. 이 부자간의 대사가 정말 감명깊다.

"세상이 널 어찌 보더냐."

"개돼지도 못한 버러지로 보더이다."

"내 보기에도 그렇다."

"?!!"


"개돼지만도, 벌레만도 못하지. 그러나 대풍창에 걸려 문드러진 살갗은 네 허울일 뿐이다. 진정으로 개돼지만도 벌레만도 못한 것은 너의 몸뚱이가 아니라 원한으로 뒤틀린 네 마음이야. 허울을 벗는 것은 마음가짐에 달렸다. 사람처럼 살고 싶으면 이제 그만 허울을 벗거라."

 

 

이 대사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과거 한센병 환자에 대한 취급이 정말 참혹하긴 했지만, 그와 상관없이 상화가 괴로워하고 시도때도 없이 북을 쳤던 이유는 외부가 아니라, 스스로를 벌레만도 못하게 보는 자신의 마음에 있었다.

 

내가 진정 괴로운 이유가 남 때문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어서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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