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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

감자에 얽힌 낭만과 유럽 역사 이야기

by 밀리멜리 2020.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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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삶으려 하다가, 정말 잡다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감자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고구마보다 달지도 않고, 뭔가 밍밍하고, 소금 찍어먹어야 하고. 글쎄, 감자 삶아먹는 것보다는 고구마가 맛있으니까. 

 

하지만 감자 요리는 더 다양하고 더 맛있다. 사람들이 환장하는 프렌치프라이도 감자를 튀긴 것이고, 매쉬 포테이토나 감자전, 감자 옹심이, 감자떡 등. 강원도가 고향인 우리 엄마는 감자를 좋아하신다. 감자가 밋밋하다고 싫어하는 나를 위해 강원도 요리를 자주 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김치부침개나 파전보다는 감자전이 더 익숙하다.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전분때문에 쫄깃쫄깃한 감자전. 어쩐지 나에게 감자전은 센티멘탈한 느낌이 있다.

 

감자 위에 주로 청양고추를 올린다. (이미지출처: 유튜브 램블)

 

 한국 근대문학과 감자

 

국사책에서 감자는 조선 말기에 들여왔다 쓰여 있었으니, 청나라를 통해서였든 어디서였든 수입된 작물이다. 19세기 감자가 수입되었을 당시에는 감자가 조세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쌀을 수확하면 세금을 내야 하지만, 감자를 수확하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조정에서 감자를 금지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한국 문학에서 감자 하면 김동인의 <감자>가 떠오른다. 소설 속의 주인공 복녀는, 가난함을 견디지 못하고 타락해 매춘으로 빠지게 되고, 결국 감자를 훔쳐먹다 들켜 감독관인 왕서방과도 관계를 맺게 된다. 결국에 씁쓸한 결말이 나서, 이 소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역시 '감자'하면, 김유정의 <동백꽃>이 제일이다. 너무나도 예쁘고 귀여운 소설이다. 마름의 딸 점순이는 소작농의 아들인 '나'에게 관심이 있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괜히 괴롭히기만 한다. '나'도 점순이가 예쁘다고 생각은 하지만, 괜히 잘못 엮였다가 땅을 뺏겨 농사를 짓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느 집엔 이거 없지?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하고 점순이가 행주치마에서 꺼내 건네는 더운 김이 모락모락한 감자 세 알. 그리고 그걸 뿌리치는 남자애. 아, 역시 이게 감자에 담긴 낭만이지.

 

 감자는 어디에서 왔을까

 

원산지는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이며, 기원전 3천년 전부터 먹어왔다고 한다. 그 말을 들어보니,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에는 정말 영양이 높은 작물들이 많은 것 같다. 슈퍼푸드라는 퀴노아, 예르바 마떼 차, 이름도 생소한 마키베리, 과라나에다 전 세계인들이 먹는 감자까지. 어떤 환경이 그렇게 좋은 작물들을 자라나게 한걸까?

 

그러다 유럽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항로를 개척하고, 감자는 유럽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감자를 들여온 유럽인들은 매우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밍밍하고 맛이 없고, 못생긴 감자. 처음에는 가축 사료로나 쓰였다고 한다.

 

영국인들의 수탈이 심했던 아일랜드에서는 그나마 영국인들이 감자를 싫어해 식량을 뺏기지 않기 위해 감자를 심었다고 한다. 밀을 심어봤자 다 뺏기니, 영국인이 먹지 않는 감자를 심기 시작한 것이다. 그 감자가 유행해 아일랜드의 인구가 200만에서 800만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그렇게 감자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에, 아일랜드 주민들은 유럽을 휩쓴 '감자 역병'으로 받는 피해도 컸다. 당시 아일랜드 사람 3명 중 1명이 감자가 없어 굶어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를 많이 먹는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아일랜드 핏줄의 미국 코미디언 코난 오브라이언의 쇼에도 아일랜드 사람들에 대한 그런 고정관념이 보여진다.

 

아일랜드계 코난은 감자를 좋아해!

아일랜드 뿐 아니라, 유럽에서 감자의 보급은 혁명적인 일이었다. 쌀을 재배하던 기술이 발달했던 아시아와는 달리,  폭발적인 인구부양력으로 18세기~20세기 전반까지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조그만 감자가 전 세계인을 살렸네. 

 

 프랑스와 독일의 감자 홍보

 

프랑스의 감자 소비는 프랑스 혁명과 관련이 깊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뚜와네뜨는 감자꽃으로 머리를 장식하기도 하고, 관상용으로 왕궁에서만 감자를 재배하고 있어서, 감자를 볼 수 없었던 민중들은 감자를 매우 귀한 식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점을 눈치챈 앙투안오귀스탱 파르망티에(Antoine-Augustin Parmentier)라는 농경학자는 루이 16세로부터 황무지를 받아 텃밭을 만들어 감자를 심었다. 낮에는 군인들을 동원해 감자밭을 엄중히 지키고, 밤에는 일부러 훔쳐가기 쉬우라고 무방비로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결국 많은 백성들이 감자를 훔치고, 혁명 전후로 프랑스 전역에서는 감자가 크게 유행했다.

 

프랑스의 농경학자 파르망티에와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2세 (출처: 위키)

 

독일 지역의 프로이센 왕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곳에서도 감자를 재배하기는 했으나 돼지 사료용으로 쓰였고, 대흉작이 들자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2세는 감자를 심으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불만을 표하며, "개조차 맛이 없어서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라며, 감자를 불에 태워버리거나 강물에 빠뜨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감자를 먹으려 하지 않자, 프리드리히는 꾀를 내어 "이제부터 감자는 귀족만이 먹을 수 있다"고 선포한 후, 공터에 감자를 심고 근위병을 동원하여 감자밭을 꾸미고 지키게 하였다. 물론 낮에만 보여주기 식으로 감시하고, 밤에는 농민들이 감자를 훔쳐가도록 유도했다. 결국 왕이 먹는 감자는 뭔가 특별할 것이다라는 소문이 돌면서, 감자가 프로이센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후일 프리드리히 대왕은 감자 보급을 기념하는 뜻으로 '감자 대왕'이라는 애칭을 얻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감자는 프랑스어로 '뽐 드 떼흐'(땅의 사과, Pomme de terre)라고 하지만, 이곳 퀘벡에서는 '빠땃'이라고 부른다. 뽐 드 떼흐와 빠땃은 같은 감자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뭔가 어감이 다르다. 퀘벡의 프랑스어는 프랑스처럼 우아한 맛은 좀 없고, 꽥꽥거리는 느낌이 강하다.

 

여러분은 '뽐드떼흐'와 '빠땃', 어느 게 더 우아하게 들리는가? 일부 퀘벡 사람들도 자기네 말이 프랑스에 비하면 우아한 맛이 없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나도 프랑스처럼 우아한 어감이 좋지만서도 이미 "빠땃빠땃!" 하며 발음하는데 ㅋㅋㅋㅋ 우아해지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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