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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

이태원 마트의 대추야자와 한남동 카페의 펜넬 차

by 밀리멜리 2020.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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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들은 이태원을 다 좋아한다. 아무래도 영어강사를 하다 보니, 교포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고 이태원에서만 살 수 있는 외국 물품들과 들썩이는 분위기, 이국적인 음식들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태원이 그들에게는 고향을 느끼게 하는 곳인가 보다.

 

이태원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가 생각이 나고, 이태원 클럽에서 퍼진 코로나 유행이 큰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다. 내가 아는 이태원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태원 골목 느낌 (출처: 경인일보)

나는 이태원에서 클럽이 들썩들썩한 대로보다 좁은 골목길이 좋다. 사람이 적어 조금 무섭기도 하지만, 이슬람 사원도 있고 할랄 푸드를 파는 포린푸드마트도 있고, 간판 없는 작은 비건 식당도 있고. 그런 골목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이태원에 도착하면 그 포린푸드마켓에 들러 병아리콩이나, 특이한 향신료, 데이츠라고 불리는 대추야자 한 봉지씩을 사기도 했다.

 

대추야자는 우리나라 제사상에 올리는 말린 대추와는 달리, 속이 부드럽고 달아 곶감을 먹는 느낌이 난다. 몸에도 좋으니 구독자분들도 이태원 가면 몇 개 사먹어 보시면 좋겠다. 효능이 뭐 엄청나던데... 대추야자를 한 봉지 사서 주변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다들 신기해하고 맛있어한다. 어느 날은 학원에서 가르치던 학생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는데, 다음주에도 '선생님 대추야자 더 없어요? 맛있었는데.' 하던 학생이 기억이 난다.

 

대추야자(dates)

 

이태원에서는 특이한 이국적인 식당을 찾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멕시코 타코나 브라질식 스테이크, 베트남 식당, 비건 식당 등등. 내가 좋아했던 어느 비건 식당은 외국인만 가득해서, 메뉴도 모두 영어였고 손님 중 나 혼자만 한국인인것 같은 이질적인 식당도 있었다. 재미있었다.

 

아무튼 나에게 이태원은 대추야자와, 좁은 골목의 이국적인 식당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펜넬 차를 이야기하려다가 갑자기 이태원 이야기가 나온 것은, 내가 펜넬 차를 처음 먹어본 곳이 이태원 근처 한남동의 카페였기 때문이다. 친구와 미술관 전시를 보기 위해 한남동을 갔는데, 복작복작하고 떠들썩한 이태원과 달리 바로 옆동네인 한남동은 무척이나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이었다.

 

한남동의 카페 분위기 (출처: 망고플레이트)

 

밤이 어둑어둑해져가고 있었기 때문에 커피보단 차가 마시고 싶었고, 친구와 어느 찻집으로 들어갔다. 사진의 카페와는 관련이 없지만, 뭔가 비슷한 분위기였다. 고급스런 2층 건물 흰색 벽, 넓은 유리창이 있는 건물로 들어서면 둥그런 테이블에 흰색 테이블보가 깔린 예쁜 찻집이었다. 그런데 메뉴를 여니 아뿔싸. 무슨 차 한잔에 8천원이야? 차마다 무슨 효능도 많네. 고급스러운 잔에 찻잎을 직접 우려 주는 찻집이었지만, 한 잔에 8천원은 좀 놀라웠다. 

 

당시 한창 식단관리를 하고 있을 때라서, 식욕억제에 도움이 된다는 펜넬 차를 선택했다. 소화기능에 좋고, 다이어트에 좋고, 혈관이나 눈 건강에도 좋다고 쓰여 있긴 했지만, 뭐 한 잔밖에 안마셨으니 효능을 느낄 턱이 없었다.

 

펜넬 차의 맛은 글쎄, 다른 허브차보다 맛있진 않지만 뭔가 몸이 건강해지는 그런 맛이긴 했다. 좀 더 설명하자면, 허브 느낌도 많이 나는데 향신료를 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로즈마리 티랑 비슷하지만 좀 더 풀맛이 난다. 펜넬의 다른 이름이 '산미나리'라더니, 미나리를 끓인 차를 마시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새로 산 펜넬 차. 

 

며칠 전 슈퍼에서 유기농 펜넬 차가 20티백 한 상자에 3천 원밖에 안 하는 것을 보고 당장 집어왔다. 옛날에 내가 한 잔에 8천원에 먹던 건데, 20개에 3천원이라니, 말이 돼?

 

그렇지만 내 문제점이 바로 이거다. 돈으로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가치를 돈으로 비교하려 한다. 고즈넉한 동네에서, 미술관 전시를 보고 몸에 좋다는 이국적인 차 한잔을 처음으로 먹어보는 경험은 8천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 차맛을 알아가고, 내 차 취향을 알게 되고, 그러다 결국 펜넬 차의 효능을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면, 그 경험은 또 3천원 훨씬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것 같다. 돈으로 비교하는 습관을 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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