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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부탁하기 어려울 때 어떻게 해야 할까?

by 밀리멜리 202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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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이곳에서 일한지도 1년 2개월이 되어간다. 1년이 지나면 주어지는 혜택 중 가장 좋은 것은 바로 바캉스를 신청할 수 있다는 것!

1년에 4주간의 바캉스가 주어지고, 적당히 나누어 쓸 수 있다. 나는 3월에 한국에 가려고 비행기티켓을 끊었다. 생각만 해도 너무 신나!

그런데 이리저리 스케줄을 보다 보니, 내가 참석해야 하는 중요한 회의 하나가 바캉스 기간과 겹쳤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같은 행정비서에게 부탁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3시간짜리 긴 회의에다가 회의록 작성에만 며칠이 걸리는데 (내 경우)... 너무 큰 부탁인 것 같아서 부담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업무 부탁을 잘 못하겠다. 남이 나에게 부탁하는 건 잘 받아주는데, 남에게 부탁하는 건 어렵기만 하다. 타고난 성격인가, 어릴 적부터 그랬다.

비행기 티켓을 살 때 꼼꼼하게 내 스케줄을 확인하지 않은 탓이다.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지? 고민을 좀 했다.

내가 끙끙거리는 걸 보더니 찬이가 비행기 날짜를 늦춰보자고 말했다. 

"한국 가는 거 하루 미룰까? 그러면 회의 끝나고 갈 수 있잖아."
"음... 수수료 붙지 않아?"
"돈이 문제냐. 너 끙끙거리는 거 못 들어주겠어. 돈 주고서라도 바꿀 수 있으면 바꾸자."

근데 이건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 티켓을 사기 전 스케줄을 확인하지 않은 내 탓인데, 그걸 찬이가 고쳐주는 건 뭔가 더 찜찜했다.

"그래도 내 일이니까, 내가 처리해야지.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부탁하는 게 부담스럽지만, 어떻게든 부탁해야지 별 수 있나?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잖아...🙃

 



다음 날, 이사벨에게 회의를 녹음해줄 수 있냐고 부탁을 했다. 이것도 얼굴 보고 말하기가 어려워서 메일을 썼다. 이사벨은 그럴 필요 없이, 가장 가까운 행정비서인 나시마에게 부탁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시마에게 구구절절하게 나 대신 회의록을 담당해달라는 메일을 썼다. 바캉스도 처음으로 가는 거고, 4년만에 가는 거라 부모님이 보고 싶고, 너무 신나서 스케줄을 확인 못했다는 말까지... 

30분 넘게 메일을 썼는데, 답장은 1분만에 왔다.

"당연하지. 날 믿어!"

시원한 나시마의 답장을 받으니 마음이 놓였다. 너는 천사야! 고맙다고 답장을 보냈다. 휴, 그제야 안심이 된다.

다시 돌아보니 이런 정도의 업무 부탁은 괜찮은데... 나도 조지아 대신 회의에 대신 참석해 회의록을 작성한 적이 있다. 그것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왜 부탁하기 전에 걱정부터 잔뜩 했을까?

그래도 용기를 내어 부탁을 했다는 게, 내가 성장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이런 걸 부담스러워 하는 게 나 혼자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 * *

 

이번에는 구구절절하게 사연팔이를 하며 부탁을 했지만, 나중에는 상사인 이사벨처럼 깔끔하게 부탁을 하고 싶다.


이사벨이 부탁하는 방식은 정말 배울 만 하다. 언제나 정중하고 기분 나쁘지 않게 부탁하고, 감사표현하는 걸 잊지 않는다. 그런 이사벨이 언젠가 단 한 마디로, 카리스마있게 "거절하기 힘든 부탁"을 한 적이 있다. 바로 지금 하고 있는 번역업무다.

 

원래 다른 부서의 일인데, 번역할 양이 많아서 그 부서의 셰프도 나에게 부탁하기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셰프가 이사벨에게 이런 메일을 보냈다.

<이사벨, 크리스마스 전에 소영에게 번역업무를 맡기기로 한 거 기억해? 이미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서 직접 부탁하기가 어려워.>

이 말을 듣자마자 이사벨은 바로 나에게 이렇게 메일을 보냈다.

<너 번역할 만큼 영어 좀 하니?>

너 번역할 만큼 영어 좀 하니?


이 말 때문에 정말 아무 거리낌 없이 번역을 하겠다고 했다. 영어 좀 하니? 뭔가 불꽃이 튀듯 자존심이 생겨서, 바로 하겠다고 했다. 나를 너무 잘 아는 거 아냐?... 🤔

그냥 해달라는 평범한 부탁이었으면 내 일도 아니고, 좀 귀찮아했을 텐데, '너 이거 할 능력이 되니?'라는 질문은 도전하고 싶게 만들었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런 질문, 뭔가 심리학책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질문이나 부탁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도 리더의 자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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