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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몬트리올 일상다반사

컬리지 입학시험에 늦었다! 들어갈 수 있을까?

by 밀리멜리 2023.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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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받았다.

 

"컬리지에 입학원서 내셨죠? 토요일에 프랑스어 시험이 있으니까 학교로 9시까지 오세요. 메일 체크하셨죠?"

"어... 메일 아직 체크 못했는데요."

"휴지통이나 스팸메일함 잘 찾아보세요. 토요일 9시까지에요. 아셨죠?"

"아, 네. 알겠어요."

 

전화를 끊고 메일함을 아무리 뒤져봐도 시험안내에 대한 메일이 없었다. 뭔가 착오가 있었나...? 학교로 여러 번 전화를 해서 (이런 전화는 정말 한 번에 되는 법이 없다.) 메일을 다시 보내달라고 말했다. 다행히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아, 프랑스어 시험이라니! 컬리지 입학할 때 프랑스어권 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은 시험을 쳐야 한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반쯤은 잊고 있었다. 게다가 시험이 이틀밖에 안 남았다니 😯 이틀동안 너무너무 떨렸다. 

 

하지만 이건 좋은 소식이기도 하다. 프랑스어 시험을 친다는 건 어쨌든 서류통과를 했다는 이야기니까. 인기가 높은 학과여서 서류통과를 하고 나서도 프랑스어 시험을 치고, 그 이후에 인성검사 비슷한 테스트가 한번 더 있다. 

 

어차피 이번에 입학할 수 있을지도 잘 몰라서 그냥 과정을 알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원서지원을 한 건데, 아무튼 이렇게 시험통보를 받고 나니 이번에 입학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욕심이란 게 이런 거구만... 사실 그냥 계속 공무원 일을 해도 나쁘진 않아서 최대한 릴랙스하면서 시험 치고 기다리려고 한다. 

 

시험 당일, 시험 시작 전 30분에는 도착하고 싶어서 일찍 일어나 서둘렀다. 준비를 다 마치고 나서는 순간,

 

"아, 목이 마른데? 따뜻한 물 좀 가져갈까..."

 

싶어서 급히 다시 돌아와 물을 끓이고 담았다. 물을 챙기느라 10분을 지체했지만, 어차피 30분 일찍 도착하는 걸 감안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하철 표 사는 데 생각보다 오래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버스를 환승해야 하는데 버스 한 번을 놓쳐서 10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랬더니 결국 30분 일찍 준비한 게 부질없이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하게 생겼다. 버스 안에서 갑자기 초조해졌다. 시간이 모자란 것 같은데...

 

휴, 버스 안에서 정말 괴로웠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고 오후쯤이면 이 괴로움이 모두 끝나고 마음이 편해질 거란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학교에 딱 8분 전에 도착했다. 

 

어휴, 너무 늦지는 않았네!

 

그런데 이상하다? 학교 문이 열린 곳이 없다.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문을 잡아도 문이 모두 잠겨있다. 시험 시작 전 5분, 4분...  시간은 가는데 왜 학교 문이 모두 잠겨있지? 내가 꿈을 꾸나?

 

 

급하게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오늘 9시 학교에 프랑스어 시험을 치러 가야 하는데, 학교 문이 모두 잠겼어요! 어떻게 된 건가요?"

"지금 어디 계시죠?"

"학교 안 주차장이에요. 클리닉이랑 레지던스 건물이 옆에 있고..."

"아, 반대편에 계시네요. 주말에는 그쪽 문이 모두 잠겨 있어요. 16번가로 돌아나와서 정문으로 오세요."

"여기가 반대편이라고요? 16번가가 어디죠..."

"마담, 어디 계시는지 모르니 제가 도와드릴 수 없어요. 16번가의 정문으로 오세요."

"네, 16번가를 찾아볼게요."

 

결국 9시가 되어버렸다! 시험장 문이 닫힐 거라는 생각에 패닉했다.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았다. 아, 이렇게 시험도 못 치고 떨어지는 건가??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아직 문이 열려 있을수도 있으니까!

 

구글 지도를 뒤져서 16번가를 찾았다. 다행히 한 블록 옆이어서 겨우 정문을 찾아 들어갔다. 그러나 시험장을 찾았을 땐 이미 9시 5분이었다. 

 

 

다행히 시험장 문이 아직 열려 있었다. 교실에 들어서니 4~50명 정도의 학생들이 앉아있고, 선생님이 내가 들어오는 걸 보고 이렇게 말했다.

 

"출석확인하고 들어오세요."

 

나... 아직 들어올 수 있는 건가?? 다행히 아직 시험이 시작하지 않았다. 

 

"시험 시작은 9시 20분입니다. 필기도구와 신분증만 놓고 다 넣으세요."

 

얼떨떨하게 들어왔다. 엄청난 아드레날린 롤러코스터를 경험한 것 같았다. 아직도 정신이 없이 후들후들... 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

 

그래도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니, 사실 시험 시작 후 10분까지도 아직 멍-하니 있었지만. 심호흡을 하니 그래도 곧 시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시험은 500단어 글쓰기였는데, 주제 중의 하나가 "여행 마지막 날, 예상치 못한 이유로 비행기가 연착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쓰시오."였다.

 

비행기가 연착했다는 상황을 상상하니, 시험장에 늦은 내 처지와 비슷한 것 같아서 공감이 갔다. 게다가 블로그를 매일 쓰니, 글쓰기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블로그는 한국어로 쓰고 시험은 프랑스어로 쓰는 거지만, 어쨌든 글쓰기를 하기 전에 생각을 하고 소재를 찾아야 하는 과정은 비슷하다. 블로그를 매일 쓰는 게 글쓰기 시험에도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시험치는 와중에 블로그에 썼던 글이 생각나 한 문장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내가 인용했던 글은 다음 글이다.

 

정말 나쁜 일도 좋은 일이 될 수 있을까?

 

정말 나쁜 일도 좋은 일이 될 수 있을까?

요즘 부쩍 걷기에 재미를 붙였다. 물론 계기는 버스카드를 잘못 충전했기 때문이지만, 암튼 그 덕에 걷고 운동을 하니 결국 나쁜 일도 좋은 일이 된다. 정말 나쁜 일도 좋은 일이 될 수 있을까?

milymely.tistory.com

 

비행기 연착과 '나쁜 일도 좋은 일이 될 수 있을까?'를 연결시켜 에피소드를 하나 만들어냈다. 문법구조나 스펠링이 틀렸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내가 다시 읽어봤을 때 꽤나 재미있었으므로... 글쓰기 시험은 그럭저럭 잘 친 것 같다.

 

결과에 상관없이 시험을 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5분이나 늦었는데 입장 가능하다니...

 

블로그도 쓰기 귀찮아도 포기하지 말아야 겠다. 블로그 쓰기는 장점이 정말 많다. 나를 되돌아보게 되고, 기억력이 좋아지며, 글쓰기 시험에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무슨 진로를 선택하든 블로그는 계속해야겠다.

 

또 한가지,, 

 

이렇게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다. 사실 이전에도 시험장에 늦어서 중요한 시험을 한 번 못 친 적이 있다. 찬이는 날더러 '이렇게 덜렁대는 사람은 인생 처음 본다'라고 하는데... 나도 내가 지금까지 이런 마인드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신기하다. 내가 덜렁대는 걸 알고 있으니, 앞으로 잘 고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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