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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몬트리올 일상다반사

이비인후과에서 귀지 뺀 후기 - 귀 파내지 마세요

by 밀리멜리 202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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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더러운 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귀지 뺄 때 그 순간이 너무 시원해서(?) 자꾸 떠오른다.

귀지 때문에 귀가 막힌 게 벌써 2년이 되었다. 당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막 시작될 때였고, 나는 캐나다 의료보험카드가 없는 상태였다. 갑자기 이상하게 귀가 퉁퉁 붓기 시작했다. 아프지는 않지만 아토피가 심할 때여서 그냥 염증이 많아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귀가 부은 건 다행히 며칠 만에 자연스럽게 가라앉았다. 그렇지만 귀 안에 염증이 생겨 커다란 귀지가 생겼다. 면봉, 귀이개 등을 구해 빼보려고 애를 무진 썼다. 참, 몬트리올 약국에는 귀이개가 없어서 동생에게 부탁해 한국의 귀이개를 구해다 썼다. 아무리 빼보려고 해도 귀지는 빠지지 않고, 그런 채로 2년이 지났다. 가끔은 덜그럭거리고, 가끔은 간질간질하지만 대부분 그냥 잊은 채로 지냈다.

이제는 의료보험카드가 있지만 대체 어디에 문의해야 귀지를 뺄 수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참고로, 위급하지 않은 의료상황일 때 811에 문의하면 된다) 근처 약국에 연락을 해봤지만 그런 서비스는 안 한다고 하고, 먼 곳의 약국에서 귀지를 빼는 서비스를 해준다고 하지만 고작 그 작은 불편함을 위해 예약하고 휴가를 내고 멀리까지 가서 치료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번에 한국에 온 김에, 이비인후과에 가서 귀지를 빼달라고 할 참이었다. 예약 없이 바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나는 바로 집 근처 이비인후과로 갔다.

세상에, 동네 이비인후과에 사람이 왜 그렇게 많던지! 학원 끝나고 온 초등학생도 많고, 어른도 많았다. 

"안녕하세요. 처음 왔는데, 대기시간 얼마나 걸릴까요?"
"네, 초진표 작성하시구요. 흠... 15분쯤 걸려요."

와, 대기실에 사람이 꽉 찼는데 15분만 기다리면 된다니. 캐나다 병원에서는 예약하고도 2시간 기다리는 건 기본이라, 한국 병원의  효율성에 감탄했다.

정말 딱 15분 후, 의사를 볼 수 있었다.

"어디 봅시다... 귀지가 엄청 딱딱하네. 오늘 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의사 선생님이 여러 가지 도구로 귀지를 빼려고 노력한다. 치과 같은 소리가 나는 석션도 썼는데, 석션 쓸 때는 소름이 돋으면서 무지 아팠다.

"아유, 잠깐 좀 쉴게요. 너무 아파요."
"아무래도 귀지가 고막에 붙은 것 같네요. 녹이는 약을 써야겠어요."
"그래요?"
"약을 줄 테니까 매일 3번 이상 넣으세요. 3일 후 오시고, 오기 전날은 6번 넣으세요."
"네."

집에 가서 귀지 녹이는 약을 넣자마자 귀지가 부글부글하고 부풀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곧 귀가 막혔다. 뭐야, 왜 안 들려?

그전까지는 귀지가 딱딱해서 소리의 진동이 그대로 고막으로 전달되어 잘 들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귀지 녹이는 약을 넣으니 귀지가 더 이상 고체가 아니게 되어(?) 하루 이틀은 잘 들리지가 않았다.

드디어 3일 후 의사를 만나 귀지를 빼는 날이었다.

"귀지 녹이는 약 잘 넣었어요?"
"네, 꼬박꼬박 넣었어요."
"뺄 수 있겠네요."

의사선생님이 석션으로 귀지를 빼냈다. 갈색으로 굳어버린 큰 귀지가 연속으로 나왔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내게 귀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보여주셨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많이 나왔다.

 

2년 동안 붙어 있던 게 떨어지는 느낌이라니! 드디어 내 고막이 공기를 만나는구나.

 

시원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하고. 

귀지 녹이는 약을 써서 그런지, 뺄 때 별로 아프지 않았다. 치료를 하며 의사 선생님이 계속 강조했다.

"귀 후비지 마세요."
"네."
"손으로도 파지 말고, 귀이개로도 파지 말고, 면봉으로 파는 건 특히 더 안 돼요."
"네."
"본인뿐 아니라 누구도 귀를 파면 안돼요. 귀지가 귀를 보호해 주는 거니까. 귀지 절대 파지 마세요."
"네."
"귀 파내지 마세요."
"네, 절대 안 팔게요."

의사선생님의 신신당부에 따라, 이 치료가 끝나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다행히 귀를 안 파고 있다. 이 호된 경험 덕분에 배웠다. 절대 귀 파지 말아야지...! 

 

귀 파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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