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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몬트리올 일상다반사

샌드위치와 덴마크 가족의 부활절 명절풍경

by 밀리멜리 202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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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당일인 일요일. 늦잠자고 일어나 몸이 뻐근해서 런데이 30분 달리기를 뛰었다. 뛰다보니 평소보다 먼곳까지 왔는데,  이곳은 유대인과 그리스인이 많이 사는 동네이다.

그리스식 샌드위치가게에 들러 아점으로 샌드위치를 먹기로 했다.

그리스어로 말하는 손님과 주인 아주머니. 그리스어와 영어를 섞어쓴다.

"여기도 정전 괜찮았어요?"
"다 아웃이었지."
"유제품도 팔잖아요. 유제품은요?"
"아침에 새로 가져왔어."

며칠전 얼음비 정전 때문에 이곳도 문을 닫았다가 이제서야 연 모양이다.

샌드위치와 그리스식 커피를 시켰다.

그리스식 커피는 뭐가 다른가?

조그만 커피 끓이는 도구에 커피를 끓이는 카페사장님.

뭐가 다른가 하고 마셨는데 각각 다른 향이 세 가지가 느껴졌다. 향 너무 좋은데? 하고 호록호록 마시다가 다 마셔 버렸다. 찬이가 자기 한입도 안준다고 서운해했다.

가게는 엄청 조그마했고 테이블도 작았다. 그래서인지 옆에 앉은 손님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두 여자와 꼬마애, 한 남자가 있었는데 모두 친척 사이인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우리가 너무 시끄럽게 한 건 아닌지. 시끄럽다면 미안해요."
"아니예요, 괜찮아요.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있으세요- 를 영어로 뭐라고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Be yourself"라고 말했다.

"부활절 명절 쇠세요? (Do you celebrate the Easters?)"
"네, 쉬는 날이라 조깅하고 이웃동네도 구경하러 나왔네요. 부활절 어떻게 지내세요?"
"우린 가족이랑 보내죠. 이따가 공원에 가서 숨은 달걀 찾기를 하려고요. 요 열한살짜리가 좋아하겠죠."
"와, 멋지네요."
"우리는 덴마크에서 이곳으로 온 지 14년째인데,  매해 부활절 행사를 해요. 이따가 심심하면 저 공원으로 오세요. 구경해도 좋아요."
"고마워요."


덴마크 사람이었구나. 어쩐지 새파란 눈동자가 퀘벡 사람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났다. 그때까지도 두 여자는 영어로 뭐라뭐라 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샌드위치에 정신이 팔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아까 그 아저씨가 또 말을 걸었다.

"이 두 여인은 각자 남편에 대해 불평을 하고 있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이 여자의 남편도 아니고, 저 여자의 남편도 아니죠."

안 듣고 있었는데 굳이 알려주시는 아저씨. 난 뭐라고 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내 앞에 앉은 부인들이 말했다.

"남편이 나쁘다는 게 아니예요. 그냥 가부장제가 나쁜 거지."
"아, 그맘 이해해요."
"나도 내 남편이 싫다는 건 아니예요. 그이는 그저 좀 내향적인 거지."
"내향적인 게 무슨 뜻이야?"

열한살 짜리가 엄마에게 물었다. 그 엄마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내향적이라는 건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다는 뜻이야. 반대로 외향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과 있을 때 에너지를 얻지."
"당신은 내향적인 편인가요?"

갑자기 나에게 묻길래 나는 샌드위치를 삼키며 말했다.

"네. 저는 좀 내향적인 편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샌드위치도 먹고 앉아서 우리랑 이야기도 하잖아요?"
"네. 내향적인 사람도 다른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소통은 필요하죠."

내가 내향적이라고 하자 조금은 당황하셨는지 모든 사람은 내향적인 면도 있고 외향적인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남편이 통 움직이지 않는 게 문제라고 대화주제가 돌아갔다.

부활절도 한국의 명절이랑 비슷하구나. 가족 친척이 오랜만에 만나고, 특별한 음식과 놀이를 하고, 비슷한 명절 스트레스가 있고, 가끔 싸우기도 하고.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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