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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책 리뷰

독후감: 위화의 원청 - 상처란 언젠간 아물고 슬픔도 지나가기 마련

by 밀리멜리 2023.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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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장편소설 '원청'을 읽었다. 중국 소설은 자주 읽는 편이 아닌데, 읽다 보면 중국 소설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이야기 전개가 급물살을 타고 사건에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 푹 빠져들게 되는데, 그 와중에 끼워넣은 블랙 코미디가 주성치 영화같은 느낌이 든다.


이 소설은 중국의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청나라가 무너지고, 무정부 상태에 전쟁이 계속된다. 도적떼와 아편 문제가 사람들의 삶을 괴롭힌다. 읽다 보면 이때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기구하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부자건 가난하건 대부분 처참한 인생을 산다. 작가 위화는 그런 기구하고 처참한 순간에 가끔씩 웃긴 장면을 집어넣는다. 이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버렸다.

예를 들어, 토비(도적떼)가 너무 기승을 부려 마을 사람들을 납치해 가고, 고문을 시키고 귀를 자르는 등 잔악한 행동을 저지른다. 토비들은 일단 몸값을 받으면 마을 사람들을 되돌려 주긴 하지만, 이미 인질들은 고문으로 몸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이다.

이런 잔인한 장면들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좀 괴로웠는데, 앞으로의 전개가 심상치 않다. 마을로 되돌아온 인질들은 자기가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 설명하며 한탄한다. 고문이 어땠는지 직접 시범으로 보여주다가, 얼마나 그 고문을 오래 버티는지 자기들끼리 시합을 한다. 이 시합은 정식 종목이 되어(?) 마을 대회가 열렸고, 이 대회에 참석한 사람은 다리가 아파서 잘 걸어다니지도 못한다.

 


이게 뭐야! 하고 실소가 나왔다. 아예 대회를 만들어 버리다니!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걸까? 

게다가 한쪽 귀를 잘린 인질들은 균형을 잘 잡지 못해 항상 삐딱하게 생활한다. 자꾸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걸음을 걷는 걸 상상하노라면 슬프지만 한편으로 또 웃음이 나는 걸 어떡하나?

또 하나 기억나는 장면은 어느 눈치없는 뱃공이 도적떼에게서 탈출하는 장면이다. 이 뱃공은 빨리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도적떼가 자기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손을 흔드는 줄 알고 함께 손을 흔들었다가 손에 총을 맞는다.

 


이런 장면은 꼭 주성치의 코믹영화같은 데서 나올 법한 장면이다. 읽다 보면 웃기면서 슬프지만,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그런 기분이 된다.

이야기는 린샹푸와 샤오메이, 두 사람의 인생을 그리는 것으로 전개된다. 삶에 고난과 행복이 찾아오고, 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재밌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그러니까 이런 게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고난을 당한다. 부자건 가난하건 성격이 착하건 나쁘건 누구나 다 나름대로의 고난을 겪는다. 특히나 이 소설에서 나온 전쟁이나 도적떼는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나름대로의 그 상황에서 선택을 한다.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거나,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기다리거나, 신의를 지키거나... 어떤 선택도 좋고 나쁜 게 없고, 각자가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며 살아갈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죽고, 어떤 사람들은 살아 남고, 상처에 괴로워하고, 그러다가 살 만 하면 또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상처란 언젠간 아물고 슬픔도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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