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시마와 점심 산책을 나섰다. 나시마는 새로운 목걸이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중고상점에서 산 거야. Croix du sud 모양이 있다니 진짜 럭키하지!"
"와, 예쁘다. 이게 뭐라고? 크와듀수드?"
"응, Croix du sud(남십자성)이야. 프리뻬리에서 가끔 이렇게 좋은 물건을 찾을 수 있지! 우리 점심시간 많이 남았는데 요 앞에 한번 가볼래?"
"좋아."
중고상점은 프랑스어로 프리뻬리(Friperie)라고 한다.
나시마와 병원 앞 거리를 걸었다. 나도 자주 돌아다닌 거리지만, 거리에 무슨 상점이 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 여기 중고상점인데, 오늘 문 닫았네? 올 때마다 문 닫는단 말이야, 여긴."
"아, 아쉽네. 여기 신기한 물건들 많네? 기모노도 있고, 이상하게 생긴 부츠도 있고, 이건 촛대인가...?"
우리는 닫힌 가게 앞을 기웃거리다가 길 건너 철물점을 발견했다.
"아! 철물점 열었다. 구경 갈래?"
"철물점?"
"난 만들기를 좋아하니까 철물점에 자주 오거든."
철물점에 올 생각은 한번도 안 했는데, 보니까 재밌는 물건들이 많다. 난 만들기를 시도조차 안해봤으니까.. 퀘벡에는 특히나 간단한 가구 만들기, 페인트칠 등등은 혼자서 하는 사람들이 많고, 만들기를 주제로 한 유명 티비 프로그램도 많다.
나시마는 창문청소 스프레이와 주방청소키트를 샀다. "창문 청소 이거 진짜 좋아!"라고 추천해준다.
"우리 드러그스토어에 갈까? 아직 시간 좀 남았어."
"좋아."
"드러그스토어에 뭐가 이렇게 많을까? 이거 봐봐, 계란이 싸다!"
그러고보니 드러그스토어에 정말 물건이 많다. 신라면 컵라면도 보이고, 신선식품이나 머핀, 인형, 편지지, 화장품까지...
"향수 22달러면 엄청 싼데!"
신나게 구경을 하고 돌아왔다. 중고상점이 문을 닫아 아쉬웠지만, 나시마가 여러 가게를 소개시켜 주었다. 철물점부터 시작해 중고가게, 레스토랑, 드러그스토어, 출산센터...
"여기 레스토랑은 내 옛날 동료가 좋아하던 곳이야. 회식하자고 건의해 봤는데 너무 비싸다고 그러더라고."
"여긴 불법영업을 하다가 경찰에 걸려서 문 닫았대."
"여기 기억나지? 메종드내상스, 회의하느라 우리 같이 왔었잖아. 여기 영상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다른 곳에서도 연락이 와서 방문하고 사진찍어 달래."
"우와, 갈 거야?"
"그럼, 시간 봐서 가야지."
인스타그램에서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나시마는 가끔씩 이렇게 촬영 제의를 받는다. 계약을 해서 돈 받고 촬영하는 경우도 있고, 무료 체험이나 식사를 대접받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300달러짜리 럭셔리 캠핑장의 초대를 받기도 했다. 내가 대단하다고 하니, 그래도 영상 편집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집에 가서 저녁에 3시간은 꼬박 편집해야 해."
새로운 것을 배우기 좋아하는 나시마에게 인플루언서 활동이 활력이 되는 것 같다.
나시마는 알제리 출신이라, 알제리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주말에는 수영 갈 거야."
"이제 곧 선선해지니 얼른 가야겠네. 수영장으로 가?"
"아니 호수! 그 호수 깨끗해서 좋아! 내가 나중에 사진 보여줄게. 몬트리올은 바다가 없잖아. 알제리는 엄청나게 큰 지중해 해변가가 있는데."
"오, 너무 좋겠다."
"그치만 수영은 못해."
"왜? 수영금지야?"
"아니, 여자들은 수영복 못 입거든. 입는 게 금지는 아니지만, 입으면 바로 성희롱을 받을 거야. 문화가 좀 그렇거든. 경제적으로도 발전하지 못했어. 지중해 바다 아래쪽으로는 다 사하라 사막이거든. 그래도 사하라 사막에는 석유랑 자원이 엄청 많아! 그치만 알제리는 130년동안이나 프랑스 식민지였고, 그 이후엔 내전이 있었고. 별로 발전할 기회가 없었지."
나시마가 이야기하는 알제리 이야기에는 언제나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한국이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광복을 얻었을 때는 이미 일본군이 패망하기 직전이었다지만, 나는 가끔 한국이 알제리처럼 130년 식민기간을 거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도 한다. 물론 상상하기 싫지만... 아마 한국어를 못 쓰고 있겠지.
알제리 사람들이 오랜 식민생활 끝에 자원을 다 뺏겼어도 별로 프랑스를 증오하지 않는 것도 신기했다. 너무 오래되면 증오도 잊혀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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