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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생활/공무원 이야기

얼떨결에 수영을 배우기로 했다

by 밀리멜리 2023.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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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뭐 할 거야? 날씨 좋다는데."
"나 할 꺼 진짜 많은데. 들어 볼래?"

마리가 폰을 꺼내들며 말했다. 내 동료들은 계획짜는게 실제 일이라 그런지 계획을 정말 잘 짠다. (실제로 잡 타이틀에 계획이 들어간다)

"일단, 배가 더 나와서 임신복을 사야하고, 아기 방 꾸며야 하고, 서재에 모니터 설치 해야 해. 페인트칠도 해야 해서 철물점에서 페인트랑 키트 다 사놨지. 그리고 테라스 창문에 실리콘이 다 낡아서 그거 떼어내고 새로 실리콘 바르려고."
"그거 다 혼자 한다고? 남편은?"
"에... 남편 있으면 오히려 시간만 더 걸려. 내가 후딱 하는 게 낫지."

임산부 몸으로 어떻게 저런 일을 혼자 다 하는지 대단하기만 하다.

"오늘은 좀 추운데, 주말이랑 다음주는 더워진대. 테라스에서 일하기 좋은 날씨지!"
"주말에 테라스에서 일하겠다고?"
"아니, 테라스에서 작업한다고."
"아, 역시 그랬군. 프랑스랑 소영이는 주말에 뭐 해?"
"난 야외수영장 갈 거야. 날씨가 추워져서 안 닫았으면 좋겠는데, 오! 열었다!"
"난 모르겠어. 집이나 카페 가서 공부할거야."

난 과학공부하는 것 말고는 계획이 없다. 요즘 정말 주말에 별로 나가지 않는 것 같다. 공부한다고 하니 둘의 표정이 좀 찡그려진다. 프랑스가 묻는다.

"이렇게 좋은 날씨 얼마 안 남았어. 넌 수영 잘 안해?"
"수영할 줄 몰라."
"정말?!!!!"

프랑스가 놀란다.

"응, 십년 전인가, 한달 쯤 수영 등록하고 겨우 뜰 수 있게 되었나 싶었는데 그리고 그만뒀거든. 이제 뜨지도 못해."
"오오, 그래도 퀘벡에서는 수영할 수 있어야 해. 중요해."
"왜?"
"퀘벡에는 호수가 엄청 많거든. 어딜 가든 퀘벡에 살려면 생존 수영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흐음..."

 

호수가 많은 퀘벡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는데, 마리가 갑자기 초급자 수영 코스를 찾는다.

"9월 초 아니면 1월 초에 등록 시작하는데, 너희 집에서 가까운 곳 한번 찾아줄게."

"에? 우리집 가까운 곳?"

마리가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컴퓨터로 검색을 시작한다.

"자, 이것만 찾고 너 귀찮게 안 할게. 초급자 코스고, 나도 초보자여서 겨우 수영하거든. 수영이 임산부에게 좋대. 한번 임산부도 등록 가능한가 알아볼게."

나는 그냥 멍때리고 있었는데, 마리는 순식간에 조사를 마쳤다.

"자, 등록비는 70달러고, 초급반은 월요일이나 목요일 밤에 갈 수 있어. 할래?"
"어, 그래, 하자!"

난 이런 거 거절 못한다. 이미 조사까지 다 마쳤으니 해 봐야지...

"그럼 월요일에 일찍 와서 전화로 등록하자. 등록 시작일에 사람 엄청 몰리거든. 최대한 빨리 와야 해."
"으응, 알겠어!"

이렇게 엉겁결에 수영 등록하게 되었다. 진짜 생각도 안했는데? 이 행동력 뭐지...?

 

날 챙겨주는 마리가 정말 고맙게 느껴진다.

 

 

마리의 행동력과 계획 짜는 능력은 좀 배워야겠다. 앞으로 남은 건 운전 강습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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