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쿰바가 점심을 함께 먹자고 연락을 보냈다. 바로 쿰바를 보러 가니 옆의 간호사들이 불쑥 말한다.
"쿰바가 우리를 버리고 떠난대! 누가 쿰바를 대신할 거야? 네가 할 거니?"
"응? 떠나요?"
"그렇게 됐어. 점심 먹으면서 자세히 얘기해줄게."
사실 쿰바가 떠나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좋은 소식도 아닌지라 그냥 잠자코 있었다. 쿰바의 원래 타이틀은 클래스 3인데, 클래스 1로 올라오려면 엑셀 시험을 새로 쳐야 하는데, 이 시험에 떨어져서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고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해. 간호사들은 다 알고 있지만, 너한테는 내가 직접 이야기해주고 싶었어."
"아-. 슬프다. 서운하기도 하고. 너는 괜찮아?"
"난 정말 괜찮아. 다만 여기 사람들하고도 많이 친해졌는데 그게 아쉽지. 특히 네가 소개해준 일이니까 고맙기도 하고 너와 떨어지니까 그게 아쉽다. 단지 그거야, 사람들하고 관계가 멀어지는 것 말고는 정말 괜찮아."
"정말 대단하다. 나는 네가 항상 긍정적인 게 대단하다고 생각해. 나는 원래 좀 걱정이 많고 불안한 편이거든."
"그래? 난 그런 거 못느꼈는데. 그냥 요즘 네 일이 많은 거지, 네 성격이 불안하거나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봐, 지금도! 긍정적이잖아.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한다니까."
그러고 보니 쿰바는 인간관계나 심리 쪽 책을 좋아하는 게 기억났다. 오늘도 엄청 두꺼운 책을 갖고 있다.
"이건 무슨 책이야?"
"이 책은 내가 7년째 읽고 있는 책이야."
"우와, 7년?"
"두꺼워서 오래 걸리기도 하고,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을 때마다 달라. 정말 좋아하는 책이라서 도서관에서 자꾸 대출했어."
"너랑 한 번 도서관 가고 싶다. 네가 골라주는 책 읽고 싶어."
"좋지, 언제 한번 가자."
우리는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너가 떠난다니 이렇게 섭섭한데, 다른 사람도 많이 섭섭해하겠다. 아까 간호사들도 그렇고... 다들 널 좋아하잖아."
"하하, 서운하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지. 그치만 모두가 날 좋아하는 건 아냐. 이건 우리 할머니가 어렸을 때 이야기해 준 건데, 모두가 날 좋아할 순 없는 거래."
"어, 맞아. 그건 맞는 말이야."
이전에 한국어 수업에서 읽었던 책에 나오는 이야기라서 바로 공감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속상한 일 있어서 할머니한테 가면 이 말을 해 주었지.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그리고 만약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한다면 그건 어딘가 잘못된 거라고. 그 말이 인생 사는 데 참 도움이 되었어."
"오, 그렇다. 좋은 말 해줘서 고마워."
그렇게 쿰바의 마지막 날이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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