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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리뷰/책 리뷰

아멜리 노통브의 '머큐리' 독후감 - 거울 없는 섬에 갇힌 미녀

by 밀리멜리 2021.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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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의 머큐리를 읽으면 옛날 동화책이 떠오른다. 두꺼운 양장본에 빛바랜 속지, 옛 타자기로 쓴 것 같은 글씨체와 잉크로 그린 삽화가 있는 그런 오래된 책 말이다.

 

이런 책의 특징이라면, 어린이를 대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꽤나 어둡고 공포스러운 잔혹동화가 많은 편이다. 예를 들어 분홍신을 신은 소녀의 다리가 잘린다든지, 아이를 잡아먹으려는 마녀에게 뼈를 쥐어줘서 속인다든지 하는 내용이 소름끼치도록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머큐리도 마치 동화처럼 아름다운 미녀와 여러 바다를 항해한 선장이 등장한다. 물론 이야기의 중심소재는 그 둘의 사랑이지만, 이것을 사랑이라고 해야 할지, 악랄한 범죄라고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아멜리 노통브 - 머큐리

 

 

* 아래 내용에는 약간의 스포일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상한 섬에 진료를 보러 온 간호사

 

병원에서 가장 솜씨가 좋은 간호사 프랑수아즈는 어느 날 원장의 부름을 받고 외딴 섬으로 진료를 보러 가게 된다.

 

그 섬의 주인은 수상할 정도로 두둑한 보수를 주기로 약속했지만 이상한 조건들을 내세웠다. 섬에 갈 때마다 매번 철저한 몸수색을 받고, 환자에게 질문을 하지 말 것, 환자의 외모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말 것 등을 언급하며, 이 조건을 어길 시에는 죽음을 각오하라는 협박까지 받는다.

 

외딴 섬에 갇힌 아름다운 여인

 

수상한 지시사항을 잘 따르겠다는 약속을 하고, 프랑수아즈는 환자 하젤을 진료하기 시작한다. 첫 만남, 프랑수아즈는 하젤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녀가 몇 년 동안 외부 출입도 하지 못한 채 방 안에서 갇혀 살며, 80살이 다 된 늙은 섬의 주인이자 선장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프랑수아즈는 하젤을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오후 이 섬으로 와 진료를 하며 하젤과 이야기를 나눈다.

 

 

 스스로를 가둔 하젤

 

어떻게 늙고 추한 노인이 그토록 아름답고 젊은 여자를 성에 가둬놓을 수 있었을까? 물론 선장은 엄청난 부자이며 수하들을 시켜 섬 관문을 항상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하젤은 아예 방 밖으로도 나가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선장이 하젤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이상한 믿음 때문이었다.

 

하젤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미녀 프시케에 비견될 정도로 아름답다고 묘사되며, 프랑수아즈도 처음 하젤을 본 순간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에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하젤은 정작 스스로를 끔찍하고 일그러진 괴물이라고 칭한다.

 

물론 이것은 선장의 교묘한 술수 때문이다. 선장은 폭발 사고 때문에 하젤의 얼굴이 흉측하게 녹아내렸다고 말한 후, 일부러 뒤틀린 거울을 보여주어 그녀의 얼굴이 실제로 흉측해졌다고 믿게 한 것이다. 이후 얼굴이 비칠만한 물건들은 모두 없애버려 그녀는 자신이 끔찍하다고 믿은 채 오랜 세월동안 방안에서만 지낸 것이다.

 

하젤이 스스로를 가둔 이유는 뒤틀린 거울 때문이었다

 

 

 현실에도 존재하는 뒤틀린 거울

 

작가인 아멜리 노통브는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장면이나 끔찍한 범죄를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는데, 어느 기자가 아멜리 노통브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의 소설에는 왜 그렇게 끔찍한 욕망이 나오죠? 독자에 대한 영향은 생각하지 않습니까?"

 

 

작가 아멜리 노통브

이 질문에 작가는 딱 잘라 말한다.

 

"독자에 대한 영향은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현실을 쓸 뿐이죠."

 

 

이 작가의 답변을 보고 정말 프랑스 문화에서는 현실적인 것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실제를 미화하거나 판타지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머큐리'도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에 공감이 간다. (아멜리 노통브는 벨기에 출신이고, 프랑스어로 글을 쓴다.)

 

이 소설의 소재는 외딴 섬에 사는 미녀, 그녀를 가둔 부유한 선장에서 보는 것처럼 동화적이고 환상적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다분히 현실적인데, 특히나 '얼굴이 흉측하게 보이는 뒤틀린 거울'은 우리 생활속에서도 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거울의 형태가 아닐 뿐이지.

 

MZ세대(밀레니얼, Z세대)가 중독되어 있는 인스타그램이나 틱톡같은 SNS에서 벌어지는 외모평가가 바로 소설 속 뒤틀린 거울과 비슷하다. 이런 앱들은 겉보기에는 그냥 재미있는 화면이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이용자들은 고정되고 꾸며진 이미지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외모를 편집된 이미지와 비교하며 평가한다.

 

SNS 속 끊임없는 외모평가

 

물론 SNS가 있기 전에도 아름다운 연예인들이 매체에 노출되고 그들을 우상화하는 모습은 있어왔다. 하지만 디지털 네이티브로 태어난 Z세대들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해서, 싫어도 이런 비교평가에 시달린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매일 화장을 하고, 쌩얼로는 못다녀요 하는 말을 들으면 나는 감히 그 아이들에게 화장을 하지 말라고 말할 수가 없다. 

 

자기 모습이 뒤틀려 끔찍하게 보이는 거울을 그 아이들 손에 직접 쥐어준 건 바로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프시케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를 끔찍한 괴물이라 믿은 채 살아간다.

 

이런 속마음을 어디 토로할 곳도 마땅치 않다. 이런 고민들을 살짝 내비치기만 해도 "자신을 미워하다니 몹쓸 짓이야, 너 자신을 사랑해야지! Love yourself :)" 라며 비꼬는 듯한 충고를 받기도 한다. 그런 뒤틀린 거울을 깨야 하는 건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이어야 하겠지만, 자기가 가진 거울이 뒤틀려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모습은 이 소설에서 스스로를 가둔 하젤과 비슷하다.

 

이 소설에는 특이하게도 두 가지 결말이 있다. 하나는 하젤이 바로 자신이 아름답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자신의 모습을 계속 모르고 살다가 나중에야 깨닫게 되는 결말이다. 둘 다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름다움 자체가 또 덧없는 것이라 생각하니 두 결말 모두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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