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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전당

노! 엄마는 휴식중이야, 건들지 마

by 밀리멜리 2021.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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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공원에 가서 간식 먹으며 멍하니 풍경을 보는 게 취미가 되었다. 공원에 가면 풍경도 풍경이지만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서 재미있다.

 

이날도 공원에서 멍때리고 있었는데, 엄마와 딸 셋이 내 앞에 와서 자리를 폈다. 애기들이 너무 귀여웠다.

 

요즘은 금쪽같은 내새끼를 열렬하게 시청하고 있어서 애기들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마냥 귀엽기만 했는데, 이제는 애기 셋을 데리고 나오는 엄마는 얼마나 힘들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엄마의 휴식을 존중하는 아이들

 

한국 엄마들도, 캐나다 엄마들도, 애기 셋을 데리고 다니는 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가족은 역시 캐나다 가족이구나 싶은게 느껴져서, 이 사진 속 가족이 했던 대화를 남겨놓고 싶다.

 

엄마는 핑크색 돗자리를 펴자마자 그대로 누웠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지금부터 휴식시간이야."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했다. 주변을 달리기도 하고, 바구니에 준비해온 간식을 꺼내먹기도 했다. 한창 놀다가 지겨워졌는지 막내가 바구니에서 인어공주 인형을 꺼내 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형 머리카락이 어디에 꼬인 모양이었다. 그 꼬인 머리카락을 빼내려고 힘을 쓰다가 맘대로 잘 되지 않자 결국 막내는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힝... 이거, 머리카락..."

 

막내가 칭얼거리자 맨 왼쪽에 앉은 둘째가 해결사처럼 막내에게 달려가 인형을 건네받았다. 머리카락을 당겨보고, 요리조리 풀어보고... 그렇지만 한참 잡아당겨도 잘 되지 않자, 첫째 쪽으로 인형을 슝 던져버렸다. 막내는 자기가 아끼는 인형을 언니가 던지는 걸 보고 화가 나서 야무지게 소리쳤다.

 

"그건 친절한 게 아니잖아!"

 

몇몇 단어로만 말하던 막내가 처음으로 문장으로 된 말을 내뱉었다. 언니에게 당당하게 한 소리를 했지만 둘째언니는 흥 하고 무시할 뿐이었다. 게다가 첫째언니도 인형을 고쳐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막내는 엄마한테 달려갔다. 

 

"엄마, 이거, 이거, 인형, 머리카락..."

 

하지만 엄마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오른손 손바닥을 쫙 펼쳐 막내 눈앞에 들이댔다. 엄마에게 말 걸지 말라는 신호였다.

 

지금은 NO! 손바닥 사인

 

엄마의 손바닥 신호를 보고 막내는 그냥 포기하고 인형을 다시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막내가 살짝 풀이 죽어 인형을 포기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기도 한데, 엄마가 절대로 도와주지 않는 모습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난 역시 한국인이라 그런지... 다 해결해주고 싶다. 생판 모르는 내가 그 인형을 고쳐주고 싶어서 마음만 드릉드릉했다. 

 

다른 두 아이는 절대로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았고, 막내만 한 마디 건냈을 뿐이다. 내가 자리를 뜰 때까지 엄마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조심해라', '싸우지 마라' 이런 지시 정도는 할법도 한데,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책을 읽거나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아이들이 어리지만 엄마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점이 독특했다. 개인주의 문화가 어릴 때부터 체득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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