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끼리 마니또, 시크릿 산타를 하기로 했다. 제비뽑기로 상대방을 뽑아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기로 한 것인데, 이렇게 동료의 선물을 생각해 보는 게 오랜만이다. 예산은 25~30달러 정도에, 나는 제비뽑기로 마리의 시크릿 산타가 되었다.
그런데...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무슨 선물을 사야 하지? 넷지와 함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선물 뭐가 좋을까?"
"글쎄, 아마존에 보니까 뭐 여러가지 추천이 있는데. '크리스마스 선물 아이디어' 페이지가 따로 있어."
"그래? 뭐 있는데? 나 진짜 아이디어가 좀 필요해."
"음... 머그컵이나, 머플러, 향 인퓨저, 담요, 텀블러 같은 거?"
"괜찮네. 아마존에서 살까?"
"어휴, 아마존에서 사면 한참 기다려야 해. 아마 크리스마스 넘어서 올 걸?"
"그래?!"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너무 바빠서 배송이 느리니까... 직접 가서 사는 게 좋아."
와, 한국은 당일배송 아니면 길어야 이틀인데... 여기는 배송이 2~3주 걸린단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한국에서보다 인터넷 쇼핑을 안 하게 된다.
선물 아이디어를 쟝에게도 한번 물어봤다.
"보통 크리스마스에 무슨 선물을 해요?"
"음, 좀 유머스러운 것도 괜찮지. 농담으로 선물하는 거."
"농담? 예를 들면요?"
"음, 예를 들면... 우리 모두 크리스틴이 버섯 먹기 싫어하는 거 알잖아. 아주 유명하니까. 그러니 크리스틴한테는 버섯을 이용한 요리책을 선물한다든지 그러면 재밌겠지."
"하하하하! 크리스틴이 아주 질색을 하겠는데요? 그런 아이디어도 재밌네요."
주말이 되어 시내 상점에 나와서 선물을 사 보기로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잡화점이나 기념품샵은 모두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파자마를 살까 생각도 해봤는데, 사이즈가 어떤지 모르겠어서 포기했다.
그러다 서점으로 향했다. 책 선물이 무난하니까...
그런데 다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오느라 서점이 꽉 찼다.
유독 겨울이 추운 몬트리올은 이맘때만 되면 항상 지하상가에 사람이 넘치지만, 특히나 서점은 정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많았다. 계산대 주위로 줄이 엄청나게 길었다.
재밌는 건, 계산대 줄에 책을 들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대부분 카드나 소품, 캘린더, 다이어리, 보드게임 등등을 사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근데 책 선물을 사려니, 마리가 책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산다면 소설을 사야 하나, 논픽션을 사야 하나? 아무거나 고르기도 어렵다. 나를 위한 책을 고르기도 힘든데, 남을 위한 책을 고르기는 더 힘들다.
서점에는 여러가지 잡다한 볼거리 선물거리가 많았다. 내가 보기엔 다 쓸데없어 보이는데... 이런 것도 사는 사람이 있겠지?서점에서 망치를 다 파네...😅
작은 망치, 유리병 모양의 지퍼백, 기억력 훈련 게임(?)도 있고. 이런 게 정말 팔리나 싶다. 다 크리스마스 선물용인가 본데... 장난으로 선물 주기 좋은 것 같은데, 쓸데 없어 보이면서도 은근 비싸다는 게 문제다.
서점에는 이외에도 요가매트 세트라든지, 파자마나 슬리퍼, 밀랍 실링, 타로카드, 퍼즐, 그림책, 그림도구 같은 걸 평소보다 비싼 가격에, 예쁘게 포장해서 팔고 있었다. 초이스는 많은데, 아무래도 맘에 드는 게 없다.
또 특이한 물건을 발견했다. '부처 보드'라는 것인데, "Master the art of letting go (놓아주는 기술을 마스터하기)"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설명을 보니, 저 보드 위에 붓에다 물을 묻혀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잠깐 남아있다가 물이 마르면 그림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애써 그린 그림이 사라지면서, 오직 현재에 집중하게 한다는... 그런 그림판(?)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색모래로 그림을 만들고 완성하면 모래를 쓸어버리는 불교 예술작품이랑 비슷한 컨셉인 것 같다. 완성하면 없어진다는 의미에서...
과거나 미래 걱정을 너무 하는 나에게 좀 필요한 기술이다. 놓아버리는 기술! 그렇지만 놓아버리는 것(Letting go)의 미학을 알기 위해서 어떤 물건을 또 산다는 것은... 뭔가 말이 안 된다. 무소유를 배우기 위해 소유를 한다???
아무튼, 상점 구경을 계속했다.
이건 '파티 크래커'라는 선물이다. 이게 도대체 뭔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봤다.
한 마디로 말하면, 랜덤박스다! 포장지 안에는 잡다구리한 물건들이 랜덤으로 들어가 있는데, 뭐가 들어있는지 사는 사람조차 모르는 게 묘미다. 보통 안에는 손톱깎이나 꿀수저, 키링처럼 랜덤하고 자잘한 물건들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만약에 6가지 선물통에 다 쓸데없는 손톱깎이가 들어있으면, 오히려 실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전에 뭘 선물하고 뭘 선물받았지?
이전에 한국에서 시크릿 산타를 할 때는, 무화과 잼 셋트를 선물했고, 립스틱을 선물받은 적이 있다. 립스틱은 좋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색이 아니라 결국 한두번 쓰고 못 썼었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퍼뜩, 화장품 기초 세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로션이나 입술보호제 같은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결국에 선물로 산 것은 러쉬에 들러 예쁜 비누와 로션, 샤워젤 세트를 샀다. 향이 좋은 걸 골라서 나도 기분이 좋다!
카드나 선물은 받는 것도 기분이 좋지만 주는 것도 기분이 좋다. 선물 사느라 고민하고, 고르고, 쇼핑몰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뭐 엄청 대단한 걸 주는 건 아니지만, 내가 이렇게 고민한 것처럼 다른 사람도 나를 위해 선물할 거리를 고민한다는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진다.
그냥 비누 향기를 맡고 기분이 좋아져서, 선물 사기를 잘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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