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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그 후 물안개가 흰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인어공주는 한가롭게 꼬리로 수면을 톡톡 치면서 놀고 있었다. "물거품이 되었을 때는 기분이 어땠어?" "사르르하고, 슬픔이 사라지는 기분이었지." "왜 슬펐는데?" "사랑을 잃었으니까." 하고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인어공주의 머리칼이 너울너울 흘러내렸다. "아, 왕자에게 배신당했었지." "응." "그 왕자는 다른 여자랑 결혼했어. 복수하고 싶지 않아? 너는 칼에 맞고 거품이 되어버렸는데." 그 질문에 인어공주는 희미하게 웃음인지 슬픔인지 뜻 모를 표정을 지었다. "아가, 내가 물거품이 되기로 한 건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어. 그 때 나는 너무 외로웠거든. 그래서 노래를 불러 인간을 내 곁에 끌어들였어. 하지만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인간들은 대답을 해주지 않더라.. 2020. 9. 23.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시큐리티 가드, 애덤 오전 11시, 우리 집 건물 전체가 정전이 되었다.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으니 갑자기 할 게 없어져 혼란스러웠다. 아니, 노트북은 작동하는데 정전 때문에 인터넷도 막혀서 그야말로 멍했다. 할 게 없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이렇게 인터넷에 의지하고 있구나. 1층으로 내려와 애덤에게 인사를 했는데 영 표정이 좋지 않다. 마스크 밖으로 보이는 반달모양 눈의 양 끝이 추욱 쳐져있었다. 애덤은 혹시 정전이 되었으면 리스트에 호수를 적으라고 했다. 이미 빼곡하게 여러 호수가 적혀 있었다. 또 다른 입주민이 우리 뒤로 오더니 큰 소리로 불만을 표했다. "우리 집에 애들도 있고, 손님도 왔는데 정전이 되버리면 어떡해요!" 애덤은 차분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전기회사가 정전을 처리하는 중이라고 응대했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2020. 9. 23.
원 데이 앳 어 타임 리뷰 - 깊은 울림이 있는 진짜 시트콤 넷플릭스 은 몇 번씩이나 배를 잡고 웃어야 할 정도로 재밌다. 그렇게 실컷 웃고 나면 아, 이런 사회적 문제가 있었구나 하고 배우게 되어, 공부하지도 않았는데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가 탁 트인 것 같은 느낌이다. 시트콤은 말 그대로, 이야기 속에 코믹한 요소를 집어넣어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장르다. 은 관객들이 무대를 보면서 환호하거나 함께 떠들썩하게 웃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멀티캠 방식 코미디이다. 우리가 친숙한 와 같은 방식으로, 조금은 올드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막을 통해 대사를 읽는 한국인으로서는 관객들이 웃을 때 함께 웃을 수 없을 때도 가끔 있다. 그런 거리감을 감안하더라도 통쾌하게 사람을 웃길 수 있으니 참 잘 만든 시트콤인 것 같다. 가 다루는 사회 정치적 이.. 2020. 9. 22.
유나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렇게나 올려 묶은 머리는 시간이 갈수록 아무렇게나 흐트러졌다.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옆자리 운전석에 앉은 강석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유나의 귀에 대고 욕지기를 하더니 금세 술이 깬 모양이었다. 강석의 얼굴에 후회의 빛이 어렸다. 하지만 조금 전 뺨을 크게 한 대 맞은 유나는 귀가 먹먹해져 흐린 눈으로 강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멍 심해지겠다. 마사지 잘해서 풀어." 유나는 그저 체념한 듯 웃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차 문을 열고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유나의 크림색 니트 카디건이 스르르 떨어져 가녀린 어깨가 드러났다. 흰 피부 위에 보이는 시린 멍 자국이 아직은 쌀쌀한 그 날 새벽하늘 색깔 같기도 했다. 강석은 떠나는 유나를 굳이.. 2020. 9. 21.
어느 밤, 아이리시 펍 아직 해가 떠 있는 이른 저녁이지만 거리는 북적였고 가게들은 저마다 작은 조명을 밝히기 시작했다. 붉은 벽돌과 제라늄 화분 사이 흑판에 흰 분필로 적힌 낯 뜨거운 칵테일 이름들이 눈길을 끌었다. 여자는 가슴이 길게 패인 검은 드레스를 입고 들어왔다. 일순 펍에 있던 손님들이 여자의 드레스를 스치듯 탐닉했다. 여자는 벽난로 옆 스툴에 앉아 엘더플라워 진토닉을 주문했다. 성 축일이랍시고 쨍한 초록색 옷을 입고 기네스만 마셔대는 것 따위는 딱 질색이었다. 한 모금. 라임향이 감도는 차가운 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누군가 바이올린을 켰다. 또 한 모금. 뜨거운 것이 목을 타고 적시다가 확 하고 알콜향이 퍼졌다. 누군가 원목 바닥을 구둣발로 두드리며 춤을 추었다. 진토닉을 비웠다. 옆에 앉은 어느 여행객은 그녀.. 2020. 9. 21.
내가 블랙핑크를 이제까지 모르고 살았다니... 어제 있었던 일이다. 그냥 할거 하면서 유튜브 보면서 놀고 있었는데 무슨 알고리즘의 도우심인지 'Blackpink - How you like that 해외반응'이라는 비디오를 눌러보고 싶었다. 비디오를 클릭한 순간부터 비디오를 보고 환호하는 유튜버들과 한마음이 되어 뮤직비디오를 감상했다. 언니들 댓 배대스 쏘 쿨 앳더샘타임 쏘 핫! 뮤직비디오의 모든 컷들이 너무나 화려하고 눈부셔서 정신을 쏙 빼놓는다. 뮤직비디오의 영상미를 보다가 비트드랍이 나오면서 블랙핑크 멤버들의 매력에 사로잡혀 버렸다.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lavish라는 단어가 그 느낌을 가장 비슷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열대 우림이 나왔다가, 웅장한 궁전이 나오고, 아랍풍의 시장에서 차가운 겨울 느낌이 나는 영상이 쉬지않.. 2020. 9. 20.